지난 몇 편의 글을 통해 통계적 분석은 과거에 대한 요약이지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님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투자자는 과거 데이터를 참고하여 투자 결정을 내립니다. 무엇이 추가로 고려하기에 통계량을 투자 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인지, 더 나아가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 투자라고 이야기하는 퀀트 투자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 [중급 45] 투자 전략 비교의 신뢰성 평가는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 [중급 46] 통계적 검정은 어떤 원리일까? (대응 표본 t-검정; paired t-test) - 검정은 미래를 예측하는 분석이 아니다
- [중급 47] 통계량은 왜 예측이 아닌가? (분석 기간에 따른 검정 결과의 변화 사례)
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 또는 특정 전략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과거에 그랬다는 기록이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예상이 아닙니다. 분석 대상, 기간,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가공, 해석 단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설명은 편의상 현재형으로 기술하지만, 데이터 분석에 대한 설명은 모두 과거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나신입씨의 투자 결정
신입 사원 나신입씨는 입사와 동시에 퇴직 연금 계좌를 만들었습니다. 퇴직 연금 계좌에 투자할 자산을 신중하게 검토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우상향 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환노출 ETF에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신입씨가 해당 상품을 선택한 근거는 무엇일까요?
나신입씨는 먼저 예금, 장기 채권 ETF, 주식형 ETF의 지난 20년간 수익률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예금은 원금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수익률이 가장 낮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장기 채권 ETF와 주식형 ETF는 예금보다 수익률이 높았습니다.
장기 채권 ETF가 주식형 ETF보다 안정성이 높았을 거라 기대했지만, 한국인의 경우 환노출로 투자한 주식형 ETF에 비해 특별히 덜 위험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환율이 미국 주식형 ETF의 변동성을 일부 상쇄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장기 수익률은 주식형 ETF가 확연히 더 높았습니다.
국내 주식형 ETF와 미국 주식형 ETF를 비교했을 때, 장기 수익률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환율 효과로 인해 상대적으로 미국 주식형 ETF의 안정성이 높았습니다.
나신입씨의 회사는 안정적으로 성장해 왔지만, 만일 큰 위기가 닥친다면, 한국의 경기가 좋지 못한 상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악의 경우 임금 동결이나, 장기 무급 휴가를 가야 할 정도의 상황이라면, 아마도 환율이 급등한 상태일 것입니다. 나신입씨 회사도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때 몇 년간 임금이 동결된 적이 있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2020년 코로나 사태를 참고해 보면, 국내 주식형 ETF는 국내 경기가 좋지 못할 때 상당한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로 소득이 줄어들 수 있는데, 금융 자산까지 하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미국 주식형 ETF는 같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으로 손실이 제한되거나, 오히려 자산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1997년 한국의 외환 위기처럼 경제 위기가 국내에만 국한될 수는 있지만,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 구조의 특성상 국내 경기는 좋으면서 미국 경기는 나쁜 상황은 발생하기 어렵다고 예상되었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기반으로 나신입씨는 미국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환노출 주식형 ETF에 적립식으로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월급은 원화로 받으니, 금융 자산은 달러로 보유하는 것이 나름 합리적인 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참고와 미래 예측
나신입씨가 투자 결정에 참고한 사례 또는 경향은 모두 과거 데이터입니다. 수많은 과거 사례와 경향이 있지만, 나신입씨는 그중에서 미래에 재현될 가능성이 높을 거라 추정되는 것들만 모아 투자 결정을 한 것입니다.
2000년부터 약 10년 이상 미국 증시는 횡보했습니다. 만일 동일한 경향이 미래에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면, 나신입씨는 미국 주식형 ETF의 비중은 줄이고, 국내 주식형 ETF와 예금의 비중을 높였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환율이 과거 평균 대비 과도하게 높기에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면, 환노출이 아닌 환헤지로 투자했을 수 있습니다.
과거 데이터는 투자자에게 투자 결정에 참고할 수 있는 사례나 경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통계적 분석은 과거 사례나 경향을 수치 형태로 요약하는 것입니다. 빈도나 경향의 강도도 계산하여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재현될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는 통계적 분석이 말해주지 못합니다.
S&P 500 지수가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 때 -86% MDD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과거 데이터로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면, 주식형 ETF에 투자하는 것은 합리적인 결정이 아닙니다. 경제 시스템이 꾸준히 보완되어 왔기에 미래에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추측한다면, -86% MDD는 주식형 ETF의 위험을 과대 평가한 것이 됩니다.
이를 판단하려면, 왜 대공황이 발생했고, 어떻게 극복했고,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제도가 도입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데이터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 데이터에 대한 분석 결과에 투자자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 결합되어야 투자 결정이 가능한 것입니다.
퀀트 투자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퀀트 투자란 무엇일까요? 흔히 퀀트 투자 입문서에서는 퀀트 투자를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기계적인 투자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모든 투자 결정에는 주관적 판단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정양적씨는 퀀트 투자자입니다. 수백 가지 투자 전략을 대상으로 지난 20년간 데이터로 백테스트(backtest)하여 시장 수준의 안정성에 연 10% CAGR이 높은 투자 전략을 발견했습니다. 장기 운용할 수 있는 좋은 투자 전략을 찾았다고 생각한 정양적씨는 이 전략으로 꾸준히 투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양적씨의 투자 결정에는 어떤 주관적 판단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해당 투자 전략의 시장 대비 우위가 미래에도 유지될 거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 근거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정양적씨는 여러 가지 통계적 검정 결과가 근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통계적 검정은 과거 데이터를 요약한 것뿐입니다. 해당 전략이 미래에 유효할 거라는 근거를 과거에 유효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과거 경향이 미래에도 재현될 거라는 예측이 정양적씨의 주관적 판단인 것입니다.
전략의 미래 유효성 추정의 근거가 과거 유효성일 때 발생할 수 있는 과도할 수 있는 자기 참조(self-referentiality)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투자 결정 자체를 모델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PER(Price Earnings Ratio; 주가수익비율), PBR(Price-to-Book Ratio; 주가순자산비율), ROE(Return On Equity; 자기자본이익률), 모멘텀(momentum; 예를 들어 최근 1년 수익률)을 적절히 조합하여 수익률과 위험을 함께 고려했을 때 성과가 가장 좋았던 전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 데이터에 대해 그러한 조합을 찾아 투자하는 메타 전략(meta strategy)을 시간 흐름에 따라 생성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반복했을 때의 성과를 추정하는 것이 보다 안정적인 결과를 얻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포워드 테스트(forward test)가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유용해 보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전략은 전략 수립에 참고한 데이터가 아닌 외부 요건에 따라 성과에 큰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전략은 저금리 시기에 유용할 수 있고, 또 다른 전략은 노동 집약적 경제 구조에서 기술 또는 자본 집약적 경제 구조로 바뀌는 과정에서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투자자는 고려하는 투자 전략이 시장 대비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합리적이라 추정되는 이유를 발견했다면, 미래에도 그 경향이 이어질 수 있는지를 고려해서 해당 투자 전략 적용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이러한 전략의 유효성에 대한 분석은, 전략을 개발하는 데 사용한 데이터에 직접적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퀀트 투자자라도 기업 및 경제 전반에 폭넓은 이해가 필요한 것입니다.
정리하며
투자에서 예측이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주관적인 예측 없이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라도, 따져보면 주관적 예측은 반드시 포함됩니다. 특정 투자 전략을 사용하는 퀀트 투자자라면, 해당 전략이 미래에도 유효할 거라는 주관적 판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시장을 예측하지 않고, 대응할 뿐이라면서 시장 지수가 하락할 때마다 추가 투자한다면, 시장 지수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거라는 예측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투자도 투자자의 미래에 대한 주관적 판단 없이는 결정할 수 없습니다.
에필로그
이 글로 투자 성과 분석 중급편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장기 투자와 분산 투자에 대한 통계학적 해석을 소개한 기초편과 초급편에 이어, 중급편에서는 투자에서 통계의 활용과 해석 위주로 조금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담으려고 시도했습니다.
자산, 포트폴리오, 전략을 비교 분석하여 명확한 우위를 가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사례와 함께 소개하기를 기대한 분이라면 아쉬울 수 있습니다. 중급편 후반부에 설명한 바와 같이 통계적 분석은 과거에 대한 요약이기에, 통계적 분석만으로 비교 분석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분석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감안해야 하고, 많은 경우 과거 성과 차이의 근본 원인을 데이터 외부에서 찾아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시계열 분석(time-series analysis)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데이터 외적 요인까지 세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면, 분석 범위가 광범위하게 늘어나기에 개인 투자자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전반적인 흐름은 깔끔하지 않은 연재였습니다. 여러 세부 주제를 왔다 갔다 하면서 연재한 듯합니다. 연재를 묶어서 책으로 발간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60부 정도 팔린 전작의 호응도를 생각해 보면 쉽게 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작은 투자 이론서 치고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썼다고 자부하지만, 중급편은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책을 구매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몇 편의 보완 연재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이후 연재를 한다면, 아마도 시계열 분석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연재가 투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참고 도서:
목차: [연재글 목차] 투자 성과 분석 (기초편, 초급편, 중급편):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으면 좀 더 이해가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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