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생각

[뒤집어 보는 행동경제학] 확실한 이익과 불확실한 손실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망 이론에 대한 생각)

오렌지사과키위 2023. 5. 1. 11:00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사람이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도출되는 결론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현상을 파악하고 그 이유를 밝히는 연구를 하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어 정가가 1,000원인 공책을 100원 싸게 사기 위해 할인점까지 10분간 걸어가서 구매합니다. 하지만 100만원짜리 노트북을 100원 싸게 사기 위해 동일한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둘 다 100원을 더 싸게 살 수 있어 효용은 동일하지만, 후자의 행동은 마치 비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행동경제학은 이처럼 사람이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현상을 실험으로 파악하고 분석합니다. 시중에 행동경제학을 소개하는 책이 많이 있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행동을 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깊게 설명하는 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런저런 현상이 실험으로 관측되었다는 이야기는 자세하게 설명하고, 어떤 모델이 작동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세련되게 추정하지만, 그 모델이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빠져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연재글에서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근본 이유에 대해 제 나름의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비합리적인 행동이지만, 특정한 조건하에서는 합리적일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관계로 면밀한 실험을 통한 설명은 아니니 이런 식으로 바라볼 수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보셨으면 합니다.

 

전망 이론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은 사람이 불확실한 이익보다는 확실한 이익을, 확실한 손실보다는 불확실한 손실을 선호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상황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예입니다)

  • 문제 1: [A] 400만원을 받을 확률 80% vs. [B] 300만원을 다 받기 100%
  • 문제 2: [C] 400만원을 잃을 확률 20% vs. [D] 300만원을 잃을 확률 25%

A의 기댓값은 320만원(400만원 × 80%)이며, B의 기댓값은 300만원입니다. 기댓값만 보면 A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실험 결과 80%의 사람이 B를 선택했습니다.

 

C의 기댓값은 -80만원(-400만원 × 20%)이며, D의 기댓값은 -75만원(-300만원 × 25%)입니다. 기댓값만 보면 D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실험 결과 65%의 사람이 C를 선택했습니다.

 

기댓값이 동일한 경우에도 확률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집니다. 아래와 같은 상황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역시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예입니다)

  • 문제 3: [A] 600만원을 받을 확률 45% vs. [B] 300만원을 받을 확률 90%
  • 문제 4: [C] 600만원을 잃을 확률 1% vs. [D] 300만원을 잃을 확률 2%

A와 B의 기댓값은 동일하게 270만원(600만원 × 45% = 300만원 × 90%)이지만, 86%의 사람이 B를 선택했습니다.

 

C와 D의 기댓값은 동일하게 -6만원(-600만원 × 1% = -300만원 × 2%)이지만, 73%의 사람이 C를 선택했습니다.

 

전망 이론은 사람은 불확실한 이익보다는 확실한 이익을, 확실한 손실보다는 불확실한 손실을 선호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비합리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과연 이러한 선택이 불합리한 것일까요? 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들은 적은 없기에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전망 이론 실험에서 사람의 선택이 비합리적인 이유

위의 심리 실험에는 사람의 선택을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트릭이 두 가지 숨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선택의 횟수에 대한 전제가 없습니다. 실험 참가자는 이 선택이 일회성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문제 1은 아래와 같은데, 만일 참가자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10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설명한다면 과연 기댓값이 낮은 B를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A를 선택하면 8번 정도는 400만원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할 것입니다. 기댓값은 3,200만원입니다. 그러니 이보다 낮은 3,000만원의 기댓값을 가진 B를 선택하는 사람은 줄게 될 것입니다.

  • 문제 1: [A] 400만원을 받을 확률 80% vs. [B] 300만원을 다 받기 100%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유사한 심리적 압박인데, 내가 얼마나 돈을 이미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실험자는 나는 지금 돈이 하나도 없다는 전제하에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보다 확실한 B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만일 1억원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전제한다면 선택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1억원이 이미 있으니 400만원이 더 생기나 300만원이 더 생기나 크게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경우 기댓값이 높은 A를 선택할 확률이 높아질 것입니다.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

전제를 달리하면 왜 선택의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요? 이는 실험 참가자가 이 문제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돈이 아니라 식량으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가족이 3명입니다. 어떤 선택이 더 합리적일까요?

  • 문제 1: [A] 4인분 식량을 구할 확률 80% vs. [B] 3인분 식량을 다 구하기 100%

4인분으로 더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지만 20% 확률로 하루를 굶을 수도 있는 A일까요? 아니면 안전하게 3인분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B일까요? 이 문제에서 A를 선택하는 사람은 장기적으로 생존에 불리합니다. 사람이 이틀간 먹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A를 선택하면 연달아 이틀간 식량을 구하지 못할 경우 굶어 죽게 됩니다. 4인분의 식량을 얻어 1인분의 여유가 생기겠지만, 선사 시대의 식량은 장기 보존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육류의 경우 종류에 따라 금방 상하기 때문에 획득한 그날 모두 먹어치워야 안전합니다. 그러니 여유분을 보관한다는 생각은 경우에 따라서는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A를 지속적으로 선택하게 되면 언젠가는 굶어 죽게 됩니다.

 

문제 2의 경우도 식량으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 문제 2: [C] 4인분 식량을 잃을 확률 20% vs. [D] 3인분 식량을 잃을 확률 25%

직관적으로 이해가 잘 안 가는 상황입니다. 조금 다르게 문제를 바꾸어 보겠습니다. 추운 겨울이 되었습니다. 12인분의 식량을 비축해 둔 상황입니다. 예년보다 더 추워서 얼마나 오랜 기간 식량을 구할지 못할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래와 같은 선택지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 문제 2: [C] 걸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하루 4인분 식량 소비) vs. [D] 상황이 좋아지길 기다리기 (하루 3인분 식량 소비)

C는 식량을 구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이동에서는 에너지가 소모되므로 3명이 하루 4인분을 소비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3일간 이동할 수 있습니다. D는 동굴에서 견디는 것입니다. 에너지 소모가 적으므로 하루 3인분을 소비해서 4일을 버틸 수 있습니다.

 

각기 C와 D를 선택한 집단이 있다고 하면 어느 집단이 생존에 유리할까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겨울이 길다고 한다면, C를 선택한 집단의 생존율이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니 C를 선택하는 결정이 마냥 비합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정리하며

경제학 관점에서 사람은 경제적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는 전제를 둡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사람의 생명은 무한하며, 어떤 경우에도 생존에 위험을 받지 않는다는 전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으며, 선택에 따라서는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을 하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일부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생존에 최적화된 행동이기에 현대사회에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을 수 있지만, 또 다른 일부는 환경에 따라서 여전히 유효한 합리적인 행동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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