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체중계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합니다. 체중계에 올라서서 몸무게를 측정하면 스마트폰에 자동으로 기록까지 해 줍니다. 오늘 아침에 몸무게를 쟀더니 67.3kg이었습니다. 저녁에 몸무게를 쟀더니 68.2kg입니다. 어제 아침에는 66.8kg이었습니다. 제 진짜 몸무게는 얼마일까요? 내일 아침의 몸무게는 얼마라고 예상할 수 있을까요?
퀀트 투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통계학이나 전산학(대개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관점에서 퀀트 투자를 해석할 수도 있고, 경제학의 한 분야인 금융공학 관점에서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특정 관점이 옳거나 더 유용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퀀트 투자는 여러 분야의 복합물이기 때문입니다.
접근 관점에 따라 용어에 대한 개념이나 구축하고자 하는 시스템의 구조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효용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은 사실과 다르지만, 태양계 내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할 때 실용적인 수준에서 큰 오차가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과 이어지는 몇 편의 글을 통해 퀀트 투자와 관련한 몇 가지 용어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소개합니다. 큰 줄기는 인공지능 관점이며 통계학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 인공지능은 전산학과 통계학 양쪽에 걸쳐 있습니다.
데이터와 불확실성
사람은 데이터가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되면 정확하다고 인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체중이라고 하면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82kg이라고 말하면 정확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수치 표시에서 자릿수가 늘어나면 더 정확하다고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습니다. 82kg보다 82.13kg이 더 정확해 보입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곧바로 몸무게를 잰다고 하겠습니다. 측정 과정에 일관성이 있으니 정확한 데이터가 나올 거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전날 해외 축구를 보면서 양념통닭을 야식으로 먹었다면 어떻까요? 자다가 깨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왔다면 어떻까요? 아침에 82.13kg으로 측정되면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요?
2024년 9월 10일 12시 20분에 네이버 파이낸스에서 본 삼성전자의 기본 데이터는 아래와 같습니다.
삼성전자의 PER(Price-to-Earnings Ratio; 주가수익비율)는 16.30배입니다. PER는 지난 결산 주당순이익(EPS; Earnings Per Share)을 현 주가로 나눈 값입니다. 은행 예금에 빗댄다면 이자율의 역수에 해당됩니다. 이자율이 4%라면 PER는 1 / 4% = 25가 됩니다.
네이버 파이낸스는 얼마나 대단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길래, 삼성전자의 PER가 16.30이라고 명시했을까요? 삼성전자 1주를 가지고 있다면 1년 뒤에 1 / 16.30 ≒ 6.2%의 당기순이익을 발생하는 것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이자율을 비교해서 높은 금리를 주는 은행 예금에 가입하듯 PER가 낮은 종목을 사면 됩니다.
PER의 기초 데이터가 되는 EPS는 예전에 그러했다는 데이터입니다. 철수가 지난 수학 시험에서 70점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철수가 좋아하는 도형 단원에 대한 시험이라 점수가 높게 나온 것인지, 철수가 다른 일로 바빠 시험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해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궁금해하는 다음 시험의 성적은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오른쪽에 EPS가 있습니다. 1주를 가지고 있었다면, 4,091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의미입니다. EPS는 PER를 산출하는 기초 데이터입니다. 그 아래에 추정 EPS가 있습니다. 삼성전자를 분석한 애널리스트들이 예상한 미래의 당기순이익을 종합한 데이터입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의 당기순이익이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기에 추정 EPS가 과거 EPS보다 높습니다. 추정 EPS가 높아졌고, 추정 PER는 낮아졌으니, 삼성전자를 매수하는 것이 좋을까요? 참고: 국내 애널리스트의 리포트는 미래를 낙관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추정 EPS인 5,680원은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요? 정확하다면 퀀트 투자고 뭐고 별다른 투자 전략이 필요 없습니다. 추정 PER(또는 선행 PER)가 낮은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주기적으로 변경하면 시장 대비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이터의 정확도와 미래의 불확실성
퀀트 투자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 전략을 도출하고 도출한 투자 전략을 투자에 적용합니다. 추정 PER를 사용하는 전략이라면 기초 데이터로 추정 EPS를 이용하는 셈입니다. 모든 애널리스트가 동일하게 추정하지 않을 테니, 추정 EPS는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히 도출된 투자 전략의 성과도 불확실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며 과거 데이터인 EPS를 사용하면 어떻까요? 얼핏 생각하기에 EPS는 과거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면밀하게 계산된 데이터이니 정확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데이터에는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2023년 영업이익은 6.57조원이었습니다. 어떤 고객사가 연말 특수를 기대하고 지난해보다 많은 주문을 했기에 영업이익이 늘어난 것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상보다 반품률이 높아서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연이 관여된 데이터인 셈입니다.
그 정도 차이로 발생하는 불확실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 EPS가 어떤 이유로든 매우 정확하다면 PER를 이용하여 도출한 투자 전략의 성과는 불확실성이 거의 사라질까요? 참고: EPS와 현재 주가를 알면 PER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추정 EPS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큰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PER를 이용하는 전략은 지난 결산의 EPS가 이번 결산에도 동일하게 유지될 거라는 가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추정 EPS 자리에 지난 EPS를 넣은 것뿐입니다.
다음 결산의 EPS는 지난 결산의 EPS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추정 EPS에 가까울까요? 애널리스트의 추정 EPS는 지난 결산 이후 경제와 시장 상황의 변화를 고려한 값입니다. 합리적으로 추정했다면, 더 많은 최근 정보로 도출한 추정 EPS가 다음 결산 EPS에 조금 더 가까울 것입니다.
퀀트 투자에 PER 또는 추정 PER 둘 중 하나만 사용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는 것이 좋을까요? 추정 PER가 합리적으로 도출되었다면, 추정 PER를 사용한 투자 전략의 성과가 더 높을 가능성이 큽니다.
참고: 과거 EPS와 추정 EPS는 하나만 사용하면 투자 전략 도출에 있어 구분되는 데이터가 아닙니다.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거나, 두 값의 차이를 이용하는 경우라면,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정리하며
모든 데이터는 그 자체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이상적인 동그라미가 있지만, 종이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리면, 조금씩 삐뚤빼뚤한 결과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퀀트 투자에 사용하는 데이터는 대개 정밀해 보이는 수준으로 표현된 기본적 또는 기술적 수치 데이터입니다. 이 때문에, 퀀트 투자는 누구나 동일하게 인지하는 변하지 않는 정확한 데이터로 투자 전략을 도출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PER를 이용한다는 것은 추정 EPS가 지난 EPS와 동일할 거라 가정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예상이라는 측면에서 과거 EPS를 사용하든 추정 EPS를 사용하든 모두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는 데이터라 볼 수 있습니다. EPS 그 자체에는 불확실성이 없을지라도, 이를 추정 EPS로 사용하면 불확실성이 생기게 됩니다.
애널리스트나 투자자마다 결과가 달라 추정 EPS는 부정확해 보이는 데이터입니다. 하지만, 합리적인 과정으로 EPS를 추정하였다면, 과거 EPS를 사용하는 것보다 투자에 있어 효용이 더 높을 수 있습니다. 참고: 효용성과는 별도로 추정 EPS와 같은 데이터는 오랜 기간 많은 종목에 대해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투자 전략 개발에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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