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저 PBR은 저평가 종목을 선정하는 지표로서의 효용이 오래전부터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는 분석 결과를 남겼습니다. 무슨 일이 발생했길래 과거에는 유용했던 지표가 지금은 유용해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이전 글: 저 PER, 저 PBR은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는 지표일까? (저 PER, 저 PBR, 고배당률 종목의 수익률 변화 추세)
펀드 매니저인 민수는 적자 종목으로 구성한 회복 펀드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적자일 때는 주가가 낮지만, 흑자로 전환되면 주가가 급등할 것이라는 투자 아이디어입니다. 적자인 기업은 저평가된 것일까요? 참고: 적자냐 흑자냐에 따라 따라 주가가 크게 다르다는 가정을 한 것입니다.
저평가 여부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달려 있습니다. 미래에 적자에서 탈출하여 흑자로 바뀌면 현재 저평가인 것이고, 미래에도 적자기 지속되거나, 급기야 상장폐지된다면 현재 적정평가 또는 고평가인 것입니다. 적자 여부는 저평가를 판별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닙니다.
민수가 적자 여부만을 따져 회복 펀드를 설정했는데, 다음 해 70%가 흑자로 전환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일부 손실을 본 종목도 있겠지만, 흑자로 전환된 종목의 수가 많아, 전체적으로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30%만 흑자로 전환되었다면, 회복 펀드는 낮은 수익률을 거둘 것입니다. 민수가 회복 펀드를 장기적으로 내실 있게 운용하려면, 적자에서 흑자로 바뀔 가능성을 높은 종목을 추려내야 합니다.
저 PBR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저 PBR을 탈출하면 현재 저평가인 것이고, 미래에도 저 PBR을 계속 유지하거나 상장폐지된다면 현재 적정 평가이거나 고평가인 것입니다. 참고: 저 PBR이나 아니냐에 따라 주가가 크게 다르다는 가정을 한 것입니다.
저 PBR만으로도 종목을 선별하는데 유용하려면, 미래에 충분히 많은 종목이 저 PBR을 탈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거 저 PBR이 유용했던 이유는 저 PBR을 탈출하는 비율이 높았기 때문이고, 최근 저 PBR의 효용이 낮아진 이유는 저 PBR을 탈출하는 비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워 볼 수 있습니다. 데이터로 살펴봅니다.
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 또는 투자 전략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과거에 그랬다는 의미이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예상이 아닙니다. 분석 기간이나 분석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가공, 그리고 해석 단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 PBR과 상태 전이 그래프
아래는 저 PBR 투자 아이디어를 저 PBR와 고 PBR 두 가지 상태를 가진 상태 전이 그래프(State Transition Graph/Diagram)로 나타낸 것입니다.
각 종목은 고 PBR 또는 저 PBR 상태에 있습니다. 미래에는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고, 다른 상태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참고: 두 가지 상태만 있다고 가정한 단순한 구성입니다.
고 PBR에서 저 PBR로 이동하면 손실이 발생합니다. 저 PBR에서 고 PBR로 이동하면 수익이 발생합니다. 저 PBR 상태일 때 투자해서, 고 PBR 상태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얻겠다는 것이 투자 아이디어입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저 PBR 상태에서는 수익만 발생하지, 손실은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상태를 단순하게 두 단계로 표현하였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연속적으로 많은 단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 PBR 상태에서 더 낮은 저 PBR 상태로 이동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장폐지될 수도 있습니다.
저 PBR 지표의 과거 성과
아래는 매년 5월 말에 저 PBR 상위 40 종목에 동일가중으로 투자했을 때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한 것입니다. 추세 비교의 편의를 위해 세로축을 로그로 표시했으며, 기준은 1.5⁰ = 1입니다. 세로축 한 칸은 50% 수익률을 의미합니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에 사용한 주요 가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 KRX 정보데이터시스템의 데이터를 이용하였습니다.
- 매년 5월 마지막 거래일에 리밸런싱을 하였습니다. 단 2024년은 5월 8일을 투자 종료 시점으로 삼았습니다.
- 매년 투자 시점에 시총 상위 200 종목으로 기본 유니버스(universe)를 구성합니다.
- 설정한 조건으로 종목을 선별하여 동일가중으로 1년간 투자합니다.
- 배당금은 다음 해 리밸런싱 시점에 받는다고 가정하였습니다.
- 상폐되는 경우 배당금을 제외하고 전액 손실 처리했습니다.
CAP 200은 매년 시총 상위 200 종목에 동일가중으로 투자한 것입니다. PBR 40은 매년 시총 상위 200 종목 중에서 저 PBR 상위 40 종목에 투자한 결과입니다. CAP 200은 KOSPI 200 지수를 추종하는 KODEX 200에 투자한 것과 유사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PBR 40은 2007년까지 시장(CAP 200) 대비 높은 성과를 보였지만, 그 이후로는 그 차이가 더 이상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래는 PBR 40 전략으로 5년간 투자 시 시장 대비 성과입니다. 수익률의 비가 아니라 5년 투자 결과로 달성한 자산 규모의 비입니다. 예를 들어 5년 투자 시 PBR 40은 자산이 3배로 늘어났고, CAP 200은 2배로 늘어났다면, 자산 규모의 비는 3 / 2 = 1.5가 됩니다.
자산 규모의 비가 1인 빨간 선이 시장의 수익률입니다. 빨간 선 위는 시장 대비 수익률이 좋았던 경우이고, 빨간 선 아래는 미진했던 경우가 됩니다. PBR 40은 2010년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투자) 이후로 시장과 비슷하거나 시장 대비 낮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 PBR 탈출률의 변화
앞에서 예로 든 적자 상태와 마찬가지로, 저 PBR이 종목 선정 지표로써 효용이 있으려면 탈출률이 높아야 합니다. 저 PBR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수익이 발생한다는 것이 투자 아이디어의 배경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저 PBR 40의 탈출률을 연단위 및 5년 평균으로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참고: 이 분석에서 탈출률은 조금 과장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상장 폐지된 종목도 탈출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PBR 40의 탈출률은 2006년 55%로 정점을 찍은 후에 점차 하락해서 2022년 15%까지 떨어졌습니다. 2023년부터는 회복되는 기미가 보입니다.
아래는 PBR 40의 연 수익률과 연 탈출률을 함께 표시한 그래프입니다. 두 변수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관계수는 0.44입니다.
탈출한 종목의 수익률은 얼마나 높을까?
상태 전이 그래프로 저 PBR 투자 아이디어를 표현할 때, 저 PBR 상태를 탈출하면 수익이 발생한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 가설이 맞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주의: 저 PBR을 탈출한 종목과 그렇지 못한 종목의 수익률을 비교하는 것은, 일종의 생존 편향이 있는 분석입니다.
아래는 PBR 40 종목 전체와, 상태를 유지한 종목(Remained), 상태를 벗어난 종목(Escaped)의 5년 투자 성과를 CAP 200과 상대 자산 비율로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파란 선 All은 앞서 설명한 PBR 40 종목 전체의 투자 성과입니다. 노란 선 Remained는 PBR 40 상태를 유지한 종목의 투자 성과입니다. 2009년까지는 시장과 비슷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이후로는 시장 대비 5년동안 -20% 정도 낮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초록 선 Escaped는 PBR 40 상태를 탈출한 종목의 투자 성과입니다. 전반적으로 All 대비 높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24년의 경우 시장 대비 자산 비가 1.2⁴인데, 2를 조금 넘는 숫자입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시장 대비 2배 많은 자산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선이 시장보다 낮은 기간이 있습니다. 2012년부터 2016년입니다. 투자 기간으로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입니다.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이 기간은 저 PBR의 암흑기라 불러도 될 듯합니다.
PBR 40을 탈출한 종목의 시장 대비 성과는 그렇지 못한 종목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사실 이는 PBR 정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문제는 과거보다 탈출률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물반 고기반인 황금 어장이었기에, 저 PBR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투자 종목 선정에 큰 무리가 없었다면, 지금은 보다 신중하게 종목을 골라내는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며
저 PBR이 종목 선정 지표로서 효용이 낮아진 이유를 저 PBR 탈출률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저 PBR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저 PBR 종목에 대한 투자 아이디어이기 때문입니다.
저 PBR을 탈출한 종목과 그렇지 못한 종목의 수익률은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저 PBR 탈출률이 과거에 비해 크게 하락했기에, 저 PBR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보다 신중하게 종목을 선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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