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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PER, 저 PBR 투자 전략은 가치 투자일까? - 견고한 투자 전략의 기본 요건

오렌지사과키위 2024. 10. 12. 16:49

가치 투자(value investing)는 기본적 분석(fundamental analysis)을 기반으로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방법으로 자산의 미래 가격(value)을 추정하고, 현재 거래 가격(price)과의 차이를 이용한 매매 전략입니다. 투자는 미래 가격을 추정하고 현재 가격과의 괴리를 이용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는 행위입니다. 가치 투자는 미래 가격을 추정하는 방식에 따른 투자 방법의 한 갈래이지, 다른 투자 방법에 비해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 명품과 가치 투자 - 가치 투자에는 가치가 없다.

수학적으로 단순화하여 설명하면, 투자는 현재 시점 t에서 특정 자산의 미래 가격을 추정할 수 있는 함수 g(t)가 있고, 현재 거래 가격을 f(t)로 표현할 때, g(t) > f(t)이면 매수하고, g(t) <= f(t)이면 매도하는 행위입니다. f(t)는 이미 알려진 정보이기에, 투자 전략은 미래 가격을 추정하는 g(t)에 따라 달라집니다. 참고: 단순화한 설명입니다.

추세 추종 전략은 g(t) = f(t) + f(t) - f(t-1)로 둔 것입니다. f(t) - f(t-1)이 추세(momentum)이며 가격이 올랐으면 플러스 값을, 가격이 내렸으면 마이너스 값을 가집니다. 가격이 오르면 g(t)가 f(t)보다 커지기에 매수하고, 가격이 내리면 g(t)가 f(t)보다 작아지기에 매도합니다.

추세 추종 전략을 f(t) 하나로만 살펴보면 추세 방향에 맞춰 매매하는 듯 하지만, g(t)를 고려하면 g(t) - f(t)의 결과를 이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투자는 최종적으로는 동일한 형태를 띱니다. 투자의 정의 자체가 현재 가격보다 미래 가격이 높아지는 자산을 보유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고려하면 수식이 복잡해집니다.

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 또는 특정 전략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과거에 그랬다는 의미이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예상이 아닙니다. 분석 대상, 기간,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가공, 해석 단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설명은 편의상 현재형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데이터 분석에 대한 설명은 모두 과거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추세 추종 전략의 예

아래는 KOSPI 200 지수를 추종하는 KODEX 200 ETF의 주가 흐름과  미래 예측값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배당 재투자를 가정하였습니다. 세로축은 로그 스케일입니다. f(t)와 g(t)는 240 거래일 이동 평균입니다.

KODEX 200과 240 거래일 추세를 고려한 미래 가격
KODEX 200과 240 거래일 추세를 고려한 미래 가격

g(t)는 현재 가격 f(t)에 지난 240 거래일(대략 1년)의 추세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지난 1년간의 주가 상승 또는 하락 추세가 향후 1년간 동일하게 이어진다는 가정하에 미래 가격을 추정한 것입니다.

g(t)와 f(t)를 이용하여 매매한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KODEX 200과 240 거래일 추세를 고려한 미래 가격을 이용한 매매 결과
KODEX 200과 240 거래일 추세를 고려한 미래 가격을 이용한 매매 결과

그래프에서 초록색 선은 추세 추종 전략을 이용한 매매 결과입니다. 이동 평균이 아니기에 매끄러운 곡선이 아닙니다. 세금과 수수료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옅은 붉은색 바탕은 KODEX 200을 보유한 기간입니다.

아쉽게는 이 전략은 KODEX 200을 지속 보유하는 벤치마크에 비해 우월하지 않습니다. 전체 기간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전략의 특성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2011년 이전까지는 벤치마크와 비슷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딱히 더 나쁘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는 증시가 큰 변동성 없이 횡보했는데, 이 기간 동안 잦은 매매가 발생했습니다. 휩쏘(whipsaw)라고 합니다. 벤치마크의 성과는 큰 변동이 없었지만, 전략의 누적 성과는 지속적으로 하락했습니다.

2016년 이후로는 벤치마크가 다시 추세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추세 전략도 벤치마크와 비슷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증시가 횡보할 때 발생한 손실이 유지되었기에 벤치마크와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참고: 세로가 로그 스케일이기에 간격의 변화를 보면 상대적인 성과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전략은 증시가 장기간 대세 상승할 때에는 무난한 성과를 보였지만, 증시가 장기 횡보하면 벤치마크 대비 성과가 낮았던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 증시가 장기 상승하면, g(t)가 f(t)보다 커지기 때문입니다.

저 PER, 저 PBR 투자 전략의 본질은 무엇인가?

가치 투자 입문서에서 소개하는 몇 가지 기본 전략이 있습니다. 저 PER 또는 저 PBR인 종목을 선정하고 주기적으로 리밸런싱 하는 투자 전략입니다.

PER(Price Earning Ratio; 주가수익비율)는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PER = 시가 총액 / 순이익 = 주가 / EPS

순이익은 지난 보고서에 명시된 과거 정보입니다. 시가 총액은 현재 주가로 계산된 값입니다. 위의 식은 다음과 같이 다시 쓸 수 있습니다.

PER = 현재 주가 / 작년 EPS

PER가 높아졌다는 것은 작년 순이익에 비해 현재 주가가 상승했다는 뜻이며, PER가 낮아졌다는 것은 작년 순이익에 비해 현재 주가가 하락했다는 의미입니다. 작년 순이익은 한동안 고정된 값이기에 PER의 변화는 주가가 상승했는지 아니면 하락했는지를 나타냅니다.

결과적으로 저 PER 투자 전략은 g(t) = f(t-1)로 두는 투자 전략입니다. 작년의 기업 실적이 올해에도 그대로 유지될 거라 가정하고, 가격이 하락하면 매수하고, 가격이 상승하면 매도하는 전략입니다.

PBR(Price to Book-value Ratio; 주가순자산비율)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수식을 적어 볼 수 있습니다.

PBR = 현재 주가 / 작년 BPS

가치 투자라고 하면 떠올리는 기업의 미래 가치(value)를 추정해서 투자하는 것과 별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과거에 집착하는 투자 전략입니다. 저 PER 또는 저 PBR 전략을 저평가된 기업과 미래를 함께하는 멋진(?) 투자 전략처럼 소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저 PER, 저 PBR 전략은 상황에 따라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 PER 위주로 이러한 전략들이 의미 있을 수 있는 이유 몇 가지를 들어 봅니다.

첫 번째는 기업 미래의 불안감에 시장이 과민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과한 수준으로 주가가 하락하여 저 PER 또는 저 PBR 상태가 되는 경우입니다. 시간이 지나 과민 반응이 해소되면, 본래 가격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반등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업이 실적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경비를 줄이거나 이익을 늘리려는 시도를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기업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진행하는 장기 투자가 실적을 일시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신규 제품을 개발하거나 공장을 증설하기 위해 잉여 이익을 투자하면, 순이익은 낮아지게 됩니다.

네 번째는 해당 기업이 업종 경기에 민감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실적이 나빠지는 기간에는 저 PER, 저 PBR 상태였다가, 업종 경기가 회복세로 전환되면 주가가 상승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분산 투자로 인한 손익 비대칭 효과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한 종목은 -50% 손실이 발생했지만, 다른 종목에서 100% 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두 종목 수익률의 기하 평균은 0%이지만, 계좌에 찍힌 산술 평균 수익률은 25%입니다.

위에 든 이유들은 모두 미래를 상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 PER, 저 PBR 투자 전략은 명시적으로 미래를 추측하지 않습니다. 미래 예측 자리에 과거 실적을 끼워 넣은 투자 전략입니다.

정리하며

투자는 미래 수익을 높이기 위해 자산의 미래 가격을 추정하고 현재 가격과 비교하여 자산의 비중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행위입니다. 기술적 분석에 기반하든 기본적 분석을 활용하든 모든 투자는 동일한 기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 가격을 추정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미래 가격을 추정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그 방법이 합리적이라고 믿을 수 있는 이유가 없다면, 견고한 투자 전략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참고: 투자자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가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장기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은 좋은 투자 전략입니다. 투자자의 부모님이 권해서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잘못된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 PER, 저 PBR 종목에 투자하는 것을 가치 투자의 중요한 방법인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저 PER, 저 PBR 투자 전략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체계화된 투자 전략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과거 실적이 미래에도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예측에 기반한 이러한 투자 전략들은 구체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다른 지표와 혼용하여 그 근거를 강화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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