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 - 4. 장기 투자와 인플레이션

오렌지사과키위 2024. 10. 15. 16:57

이전 세 편의 글을 통해 투자 수익은 배당 재투자가 반영되어야 하며, 수익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수익률로 변환할 필요가 있으며, 수익률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CAGR(연평균 성장률)과 같은 동일 기간 복리 수익률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당연하면서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법한 이야기를 왜 세 편에 걸쳐 세세하게 소개하는지 의아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지만, 궁금증을 해소하고 앞으로의 전개를 소개하는 측면에서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투자는 최종적으로는 투자 가치가 더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이를 위해 투자 성과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수치적으로 비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투자 가능한 여러 자산 중에서 어느 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유리할지 판단이 가능해야 하기 합니다. 참고: 투자 결정에 있어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비중이 높거나 직관에 많이 의존한다면, 기초 데이터가 수치로 표현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심사원이 슈퍼 패스를 쓰듯, 평가 항목 하나를 더 추가해서 본인이 판단한 수치를 적고 높은 가중치로 반영하면 됩니다.

여러 자산의 분석 결과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모델링(modeling)을 하고 정규화(normalization)를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비교를 위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CAGR(연평균 성장률)은 수익의 변화를 하나의 수치로 정규화하여 표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의 하나입니다.

CAGR은 원금과 기간을 동일하게 맞춤으로써 수익을 정규화했지만, 모델링은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했습니다. 자산 가격이 복리로 변동한다는 가정이 수익에 대한 모델입니다. 가격이 복리로 변동한다는 모델하에 CAGR이 도출된 것입니다.

CAGR은 장기 수익률을 축약하여 비교가 용이하도록 하나의 수치로 나타낸 데이터입니다. CAGR은 최종적으로 달성한 수익률에 대한 간단한 요약 정보만 담고 있지, 투자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수익의 변화 형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담고 있지 않습니다. 수익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정보가 없으니 해당 자산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없습니다. 참고: 투자 성과 분석 대상은 과거 데이터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합리적으로 유추한 미래 예상 데이터가 있다면, 과거 데이터와 마찬가지로 분석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추정할 수 있는 미래 데이터에 제약이 크기에, 일부 특성은 과거 데이터의 특성과 동일하거나 연장선상에 있다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익과 달리 위험은 정의하기 까다롭습니다. 구체적인 위험은 투자자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정의하지 않으면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무난한 모델을 가정하여 정의하고 정규화를 합니다. 수익률 지표로는 CAGR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위험에 대한 지표는 다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위험에 대한 지표 중 널리 알려진 한 가지가 수익률의 변동성을 계산한 표준 편차입니다. 수익률이 정규 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하고, 위험을 수익률의 변동성으로 정의하면, 표준 편차는 정규화된 위험이 됩니다. 정규화되었으니 다른 자산의 위험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후 위험에 대해 소개할 때 다시 설명을 하겠지만, 이전 글에서 CAGR을 도출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이해하기 쉽고 유용하면서 다른 자산과 비교가 용이한 위험 지표를 만들어야 합니다.

널리 알려진 위험 지표 중에 하나를 골라 사용하면 되는데 굳이 세세하게 설명해야 하는 이유는 투자자마다 위험에 대한 정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신의 현재 상황과 투자 목적에 맞춰 적절한 지표를 선택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필요한 경우 여러 위험 지표를 종합하여 살펴보거나 직접 만들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CAGR은 이를 대비한 연습 문제 같은 것이기에, 다소 장황하지만 그 배경을 자세하게 소개한 것입니다. 위험 지표는 불확실성(확률)에 대한 개념을 가미해야 하기에, CAGR 보다 난이도가 높아집니다.

이 글의 본 주제로 돌아갑니다.

나신입씨의 사수는 전대리씨입니다. 전대리씨는 입사전부터 주식 투자를 해 왔으며, 사내에서 나름 주식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주식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기면 부서 사람들은 전대리씨를 찾습니다. 나신입씨가 예금에 가입 상담을 받기 위해 은행을 다녀왔다고 하니, 전대리씨가 조언을 합니다.

장기 투자는 무조건 주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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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 또는 특정 전략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과거에 그랬다는 의미이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예상이 아닙니다. 분석 대상, 기간,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가공, 해석 단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설명은 편의상 현재형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데이터 분석에 대한 설명은 모두 과거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거치식과 인플레이션

전대리씨가 나신입씨에게 그림 하나를 보여줍니다. KOSPI 200 지수를 추종하는 KODEX 200의 배당 재투자 성과(TR)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KODEX 200 자산비 (PR, TR)
KODEX 200 자산비 (PR, TR)

  • 전대리: 나신입님. 은행에 예금하려고 하셨어요?
  • 나신입: 네. 대리님. 월 100만원 정도까지는 저축할 수 있을 듯합니다.
  • 전대리: 자. 이 그래프를 보세요. 이게 KOSPI 200 지수를 추종하는 KODEX 200이라는 ETF의 지난 22년간 성과예요. 국내 주식에 투자하지만, KOSPI 시총 상위 200 우량주에 분산 투자하기에 안정성이 높아요.
  • 전대리: 국내 증시는 이제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22년전에 비해 4.5배가 되었어요. 여기 파란색 PR이라고 표시된 선이에요.
  • 전대리: ETF는 배당금도 줘요. 연 2% 정도 나오는데, 이걸 재투자했다면 6.7배예요. 여기 노란색 TR이라고 표시된 선이에요. 장기 투자를 하려면, 배당금은 재투자하는 게 좋아요.
  • 전대리: 은행 예금 이자는 얼마라고 하던가요?
  • 나신입: 약정 기간에 따라 다른데, 1년짜리는 3.5%를 준다고 합니다.
  • 전대리: (계산기를 두들기더니) 복리로 투자하면 22년이면 원금 대비 213%네요. 원금이 두 배 정도로 늘어나는 것이죠.
  • 전대리: 하지만 KODEX 200에 투자하면 672%로 6배가 넘어요. CAGR이 9.1%나 되기 때문이에요. 예금에 비해 연 수익률이 3배인 셈이죠.
  • 나신입: 1년에 천만원 정도 투자가 가능한데, 그럼 20년쯤 지나면 6천만원 정도가 되겠네요?
  • 전대리: 그렇죠. 10년간 매년 천만원씩 투자해 보세요. 그럼 퇴직할 때에는 6억원의 목돈이 되는 거예요.  
  • 나신입: 우와! 그 정도면 노후 걱정이 없겠네요.
  • 전대리: 장기 투자는 무조건 주식이에요.

전대리씨의 설명은 모두 맞습니다. 하지만 전대리씨와 나신입씨는 중요한 한 가지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입니다. 참고: 수수료나 세금과 같은 다른 부가 비용은 이 글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인플레이션은 동일한 효용을 가진 상품의 가격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승함으로써, 돈의 가치가 낮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20년전 짜장면 한 그릇이 3천원이었지만 지금은 6천원입니다. 나신입씨가 올해 1천만원을 투자해서 20년 뒤에 6억원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짜장면 그릇수로 환산하면 실제 가치는 3억원으로 반토막이 납니다.

인플레이션은 투자자마다 그리고 상품마다 느끼는 강도가 다릅니다. 제가 어릴 때 바나나 한 개가 5백원이었습니다. 한 송이가 아니라 한 개입니다. 지금은 바나나 한 송이를 3천원 정도에 살 수 있습니다. 판매하는 바나나 한 송이에는 바나나 대여섯개가 달려있으니, 바나나 하나의 가격은 여전히 5백원 정도인 셈입니다. 바나나 물가는 수십년간 오르지 않은 것입니다.

짜장면은 다릅니다. 2003년에 짜장면 한 그릇은 3,083원이었습니다. 2023년에는 6,361원이라고 합니다. CAGR을 계산해 보면 연 ²⁰√(6,361원 / 3,083원) - 1 ≒ 3.7%씩 올랐습니다. 참고 기사: [그래픽] 자장면 가격 추이 [연합뉴스]

상품에 따라서는 가격이 오르면서 효용도 증가할 수 있습니다. 신형 휴대폰 가격은 매년 오르지만, 작년 모델보다 성능이 좋습니다. 작년과 동일한 성능의 상품은 가격이 그대로이거나 더 낮은 가격에 팔리기도 합니다.

투자자에게 가장 불리한 상품은 부동산(자기 집을 말합니다)입니다. 부동산은 종류나 위치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대개 장기적으로 물가 상승률만큼 오릅니다. 그렇다고 10년전에 지은 아파트가 휴대폰처럼 조금씩 더 좋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낡아져서 효용은 점차 낮아집니다.

부동산은 가격만 오르는 게 아닙니다. 사용 가치에 해당하는 거주 비용을 월세나 전세로 계속 지출해야 합니다. 신형 휴대폰 값을 아끼기 위해 구형 휴대폰을 한동안 사용하면 절약이 됩니다. 부동산에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10년간 구형 휴대폰을 바꾸지 않고 사용하는데, 휴대폰 요금은 물가 상승률만큼 계속 오르는 격입니다. 

점차 낡아가는 집에 세 들어 살면서 매년 지출하는 비용은 늘어나는 게 부동산입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배당주 ETF처럼 물가 상승률에 해당되는 3% 배당금을 받는 동시에, 주가도 1년에 3%씩 추가로 오르는 상품이 부동산입니다.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은 주거 비용을 고스란히 절약하면서, 인플레이션까지 헤지 할 수 있습니다. 참고: 부동산 투자를 권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간혹 주식에 비해 부동산의 가치를 과소 평가하는 경우가 있기에 설명한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상품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공산품과 같이 효용 대비 가격 상승률이 낮은 상품도 있고, 식료품이나 부동산과 같이 가격 상승률이 높은 상품도 있습니다. 투자자는 인플레이션 헤지 효과가 큰 자산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인적 자산, 주식, 그리고 부동산입니다.

물가 상승률이 연 3%로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전대리씨의 그래프를 다시 그려봅니다.

KODEX 200 자산비 (TR, 인플레이션 보정 TR)
KODEX 200 자산비 (TR, 인플레이션 보정 TR)

노란 점선이 인플레이션으로 보정한 결과입니다. 보정전에 비해 자산의 가치가 절반 정도로 낮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기 투자 성과를 분석할 경우에는 인플레이션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 수익률을 과대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CAGR을 이미 알고 있고 인플레이션이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CAGR이 9%이고, 인플레이션 3%라면 인플레이션 보정 후 CAGR은 1.09 / 1.03 - 1 ≒ 5.8%가 됩니다. 9% - 3% = 6%로 계산하기도 하지만, 본래는 나눗셈을 사용해야 합니다. 복리 수익률이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시기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평균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하고 싶다면, 기준 금리나 단기 채권의 가격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한국과 미국의 기준 금리 변화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2000년 이후로 최근 20년간은 금리가 좁은 범위에서 움직였지만, 그 이전까지 살펴보면 금리가 높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아래는 1980년부터의 미국 기준 금리를 추가하여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1980년부터)

1980년대 초반은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20%에 가까운 고금리 정책을 쓰던 시기였습니다. 연 15%씩 5년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돈의 가치는 (1 - 15%)⁵ ≒ 44%로 반토막이 납니다. 자산의 가격이 2배로 올라도 본전이 되지 않는 셈입니다. 수십년 이상의 기간에 대해 투자 성과를 분석할 때에는 인플레이션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반영해야 합니다.

주식이 대개 인플레이션에 헤지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인플레이션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생산품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당금은 인플레이션을 반영하여 변동되기도 하지만, 상당한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에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주가가 상승하고 배당도 재투자를 했음에도 실질 가치는 제걸음일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배당수익률 > 채권수익률 시대 "투자 패러다임 바뀐다" [인베스트조선]

정리하며

주식은 장기 투자에 적합한 투자 상품의 하나입니다. 자산의 명목 가격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수익률이 과대 평가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제 상황에서는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이 장기 누적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익률을 얻고 어리둥절할 수 있습니다. 자산의 미래 수익률은 보수적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미래에 기대하는 수준의 생활을 위해 투자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거치식에 대해서만 설명하였습니다. 일반 개인 투자자는 적립식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근로 또는 사업 소득으로 주기적인 수입을 얻기 때문입니다. 거치식 수익률을 기대하면서 적립식으로 투자하면 기대 이하의 수익률을 얻게 됩니다.

적금은 예금에 비해 돈의 평균 예치 기간이 절반입니다. 이 때문에 적금 금리가 예금 금리보다 조금 높더라도, 전체 불입한 금액 대비 이자는 예금이 많습니다.

거치식 투자와 적립식 투자 사이에도 동일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과거 수익률 그래프를 보면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고 적립식으로 장기 투자를 시작하지만, 마지막에 손에 쥐는 수익은 예상의 절반보다 조금 더 많을 뿐입니다.

또한 장기 적립식 투자의 수익률은 비현실적인 가정에 의해 과대 평가될 수 있습니다. 동일한 금액은 매월 또는 매년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거치식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이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매월 100만원씩 22년간 KODEX 200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률에 흥분한 나신입씨는 적립식 투자를 결심하지만, 22년전 신입 사원의 월급은 150만원이 되지 않았기에, 100만원을 투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동일 금액 적립식에서 초기 투자금은 이후 투자금보다 더 가치가 큰돈입니다.

인플레이션 이외에 각종 수수료나 세금 그리고 슬리피지(Slippage; 호가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부가 비용)와 같은 요인으로 인해 실제 수익률은 기대보다 낮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글: 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 - 5. 벤치마크의 목적은 무엇이고 몇 개나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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