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이 되면 그달의 투자 성과를 정리합니다. 배당금은 얼마나 받았으며, 개별 종목의 수익률은 얼마인지, 전체 계좌의 자산은 전달 대비 얼마나 변했는지 살펴봅니다. 제 경우에는 전체 수익률과 개별 전략의 수익률을 확인합니다. 어떤 분은 다음 달에 얼마를 더 투자할지, 신규/추가 매수할 종목은 무엇인지, 익절/손절해야 하는 종목이 있는지 살펴보고, 신중한 고민 끝에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기도 합니다.
계좌 자산을 파악하고 나면, KOSPI, KOSDAQ, S&P 500, NASDAQ과 같은 시장 대표 지수와 비교도 해 봅니다. 이번 달에는 KOSPI를 이겼네, 1년을 보니 S&P 500보다 못하네라고 평가하면서, 웃음을 짓기도 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본인의 것을 남의 것과 비교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남을 흉내 내어 따라잡기 위함일 수도 있고, 남보다 낫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주식 투자에서 보편적인 비교 대상을 벤치마크라고 합니다.
벤치마크의 사전적 의미는 '기준점'입니다. 본래는 토목 공학 용어로 토지의 높이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점을 의미합니다. 참고: 벤치마크 [네이버 사전]
주식 투자에서는 벤치마크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어떤 벤치마크가 합리적일까요? 벤치마크는 하나만 있으면 충분할까요?
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 또는 특정 전략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과거에 그랬다는 의미이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예상이 아닙니다. 분석 대상, 기간,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가공, 해석 단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설명은 편의상 현재형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데이터 분석에 대한 설명은 모두 과거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주식 전문가 전대리씨의 투자 철학
일반적인 개인 투자자에게 벤치마크는 더 나은 성과를 얻기 위해 비교하는 대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라톤 경기에서 선수가 좋은 기록을 얻을 수 있도록 함께 뛰어 주는 보조자인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제일유통의 주식 전문가인 전대리씨는 수년째 자신만의 투자 전략으로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전대리씨는 나신입씨에게 본인의 투자 철학을 전도합니다.
(건배를 하며) 나신입씨, 장기적인 자산 증식을 위해서는 주식에 투자해야 해요. 주식은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데, 경제는 계속 성장하잖아요. 경제에서 생산자 위치에 있는 기업도 성장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기업의 지분인 주식은 최고의 장기 투자 상품 중에 하나예요.
하지만 모든 기업이 성장하는 건 아니에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죠. 한 때는 장밋빛 미래로 가득 찼던 기업이 순식간에 거꾸러지는 건 비일비재해요. 그러니 안정적으로 성장하면서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찾아 분산 투자를 해야 해요.
저는 배당주에 투자하고 있어요. 기업이 돈을 벌었는데, 미래를 대비할 여유 자금을 제하고도 돈이 남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주주들에게 배당이라는 형태로 나누어줘요. 은행 이자처럼 현금이 따박따박 들어와요.
배당을 충분히 많이 주는 기업은 그만큼 미래에 자신이 있다고 경영진이 판단한 거예요. 매년 배당금이 유지되거나 증액되는 기업이라면,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배당이 안정적인 기업인데, 간혹 주가가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국내외적으로 큰 사건이 발생하면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은 당장 돈을 현금화하려고 하거든요. 겁이 나니까요. 그럼 우량주든 잡주든 모두 하락해요. 그때 담는 거예요.
무슨 무슨 테마주가 뜬다 이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당장 여윳돈이 없으니 보유한 우량주를 팔아서 그 돈으로 사요. 그러니 우량주인데 가격이 적정 이하로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 걸 사서 묵혀 두면 큰돈은 아니더라도 안전하게 벌 수 있어요.
누구는 미국 주식이 최고라니, 인구 대국 인도가 뜨니 하지만, 우리가 그 나라 기업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배당 든든하게 주는 국내 기업은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본 기업이 태반이에요. 잘 정리된 기업 분석 보고서도 많고,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주주 총회에 참여해서 분위기도 살펴볼 수 있어요. 아쉽게도 요즘은 기념품을 안 줘요.
그래서 전 국내 고배당 기업이 최고의 투자 종목이라고 생각해요.
전대리씨는 다음과 같은 논리(또는 투자 철학)에 기반하여 투자합니다.
- 경제는 기업과 함께 장기적으로 성장하기에 주식은 좋은 장기 투자 자산이다.
- 해외 기업보다 국내 기업이 파악하기 용이하다.
- 꾸준히 배당을 주는 기업은 수익이 계속 발생한다는 증거이기에 미래 불확실성이 낮다.
- 배당주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크게 낮아지면, 추가 매수하기 좋은 기회다.
전대리씨의 벤치마크(들)
전대리씨는 본인의 투자 논리가 현실에서 효용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유력한 증거가 발견되면 투자 논리를 되돌아보고 약점을 보완하거나 적절한 다른 투자 논리를 찾아야 합니다. 벤치마크는 이러한 점검을 위해 필요합니다.
전대리씨의 벤치마크는 무엇일까요? KOSPI 지수 하나면 충분할까요? KOSPI 지수로 전대리씨의 투자 논리를 충분히 점검할 수 있을까요?
나신입씨는 전대리씩의 설교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신입씨도 배당주에 입문하기로 결심합니다. 나신입씨는 전대리씨처럼 종목을 분석하고 투자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나신입씨는 고배당주에 분산 투자한다는 PLUS 고배당주 ETF(구. ARIRANG 고배당주)에 투자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나신입씨가 투자하는 PLUS 고배당주는 전대리씨의 투자 철학에 가장 가까운 상품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 전대리씨의 벤치마크가 될 수 있습니다.
벤치마크를 설정할 때 KOSPI나 S&P 500과 같은 주가 지수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해당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없을 수 있습니다. 벤치마크는 나신입씨의 경우처럼 투자자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결심만 한다면 투자 가능한 상품이어야 합니다. 주가 지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쉽게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닙니다.
두 번째로 주가 지수는 배당이 고려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배당금/분배금을 반영해서 투자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배당 재투자를 가정한 주가 지수가 따로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만일 그런 지수가 없다면,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실제 투자와 괴리가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KOSPI 보다는 KODEX 코스피 ETF가, S&P 500보다는 SPY와 같은 상품이 벤치마크로 더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전대리씨는 지난 5년간 PLUS 고배당주 대비 초과 수익을 얻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전반적인 투자 철학은 유사하지만, 전대리씨만의 저가 매매와 투자 비중을 조절하는 세부 전략이 유용했다는 뜻이 됩니다.
PLUS 고배당주와 비슷하거나 낮은 성과를 거두었다면 전대리씨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요? 따지고 보면, 전대리씨의 지난 노력은 불필요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역효과를 거두었다는 뜻이 됩니다. 참고: 종목을 분석했던 경험이 이후 투자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전대리씨의 벤치마크는 PLUS 고배당주 하나로 충분할까요? 전대리씨의 투자 철학을 다시 살펴봅니다. 배당을 많이 주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KODEX 코스피나 KODEX 200과 같은 배당을 고려하지 않고 종목을 편입하는 벤치마크가 필요합니다.
전대리씨는 한국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외 기업은 상대적으로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일까요? 모르거나 알 수 없으니 벤치마크가 필요합니다. 뱅가드사의 VYM은 고배당 미국 기업에, VYMI는 미국제외 고배당 기업에 분산 투자하는 ETF입니다. 적절히 분산 투자했다고 가정한 가상의 벤치마크를 만들어서 비교할 수 있습니다.
KODEX 200의 성과가 PLUS 고배당주보다 크게 높다면 전대리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배당주에 투자가 좋을 거라는 전대리씨의 투자 논리를 다시 분석해 보아야 합니다.
정리하며
투자에서 벤치마크는 왜 필요한 것일까요? 투자자의 투자 논리가 충분한 효용을 가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보완해서 투자 목표 달성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전대리씨가 나신입씨에게 설명했듯, 투자자는 자신의 투자 논리를 요약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약된 투자 논리와 가장 비슷한 방식으로 운용되는 상품을 찾으면 그 상품이 바로 투자자의 벤치마크입니다.
투자 논리가 계층적이거나 종합적이면, 전체를 구성하는 세부 논리가 여럿 있을 수 있습니다. 논리를 하나씩 제외해 보면, 조금씩 특성이 다른 벤치마크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투자자의 성과가 일부 벤치마크 대비 크게 미진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 원인이 어느 세부 논리에 기인하는지 조금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비교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이어지는 글: 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 - 6. 비교: 투자 성과는 왜 비교하기 어려울까? (자기야! 다른 매장에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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