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신입씨는 첫 월급을 받았습니다. 부모님께 드릴 따뜻해 보이는 빨간 내복을 구매하고, 동생에게 줄 용돈도 봉투에 넉넉히 담았습니다. 예상 지출을 정리해서 가계부에 적어보니 월 100만원 정도 저축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은행으로 날아갑니다. 예금에 가입하려고 합니다. 참고: 나신입씨에게는 적금이 보다 적절한 투자 상품일 수 있지만, 이해의 편의를 위해 예금으로 설명합니다.
은행 직원은 예금 기간에 따라 이자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열심히 설명합니다. 6개월 예금은 1.6%, 1년 예금은 3.5%, 3년 예금은 12% 이자를 준다고 합니다. 나신입씨는 무슨 말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준 금리가 3%라는 것은 경제에 문외한인 나신입씨도 알고 있습니다. 6개월 예금의 이자는 기준 금리보다 작다고 합니다. 1년 예금은 기준 금리보다 조금 높고, 3년 예금은 기준 금리의 4배에 달하는 이자를 준다고 합니다. 나신입씨는 3년 예금에 가입하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이전 글에서 가격의 크기나 단위가 다른 자산의 투자 성과를 비교하기 위해 수익률 또는 자산비를 사용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수익률과 자산비는 원금 대비 상대적인 변동 정도를 나타내기에 가격의 크기나 단위가 달라도 일관성 있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글: 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 - 2. 수익률, 로그 스케일, 그리고 손익 비대칭성
수익은 기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적 자산으로 1달간 250만원을 버는 나신입씨는 1년간 250만원 × 12개월 = 3천만원을 벌 수 있습니다. 수익은 250만원과 3천만원으로 다르지만, 기간을 고려하면 250만원 / 1달 = 3천만원 / 1년으로 같습니다.
투자 자산은 기간에 비례해서 수익 또는 수익률이 변동합니다. 만기가 다른 예금의 수익률을 비교하려면 만기 이자율이 아니라 동일 기간 동안 발생하는 이자율을 보아야 합니다. 수익을 원금으로 정규화하면 수익률이 되듯, 수익률도 같은 기간으로 정규화해야 비교가 용이합니다.
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 또는 특정 전략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과거에 그랬다는 의미이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예상이 아닙니다. 분석 대상, 기간,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가공, 해석 단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설명은 편의상 현재형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데이터 분석에 대한 설명은 모두 과거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나신입씨의 예금과 수익률
나신입씨의 예금 수익률은 어떻게 표현하고 비교할 수 있을까요? x축을 기간으로 두고, y축은 수익률로 두면 아래와 같은 그래프를 얻을 수 있습니다.
x축은 예금 약정 개월수입니다. 6개월, 12개월(1년), 36개월(3년) 예금의 수익률을 좌표상에 ×로 표시했습니다. 이 상태로는 예금 상품을 쉽게 비교할 수 없습니다. 기간도 다르고, 수익률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전 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모든 자산의 가격은 복리로 움직입니다. 예금은 만기가 정해져 있는 투자 상품이기에, 임의로 투자 기간을 설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하면 아래와 같이 기간에 따른 가상의 수익률 곡선을 얻을 수 있습니다.
6개월 수익률이 1.6%라면 12개월 수익률은 (1 + 1.6%) × (1 + 1.6%) - 1 = 3.23%가 됩니다. 처음 6개월 예금을 들고 받은 원금과 이자를 모두 합해서 다시 6개월 예금을 든 것입니다. 6개월 예금에 k번 연달아 가입하면 수익률은 (1 + 1.6%)ᵏ - 1이 됩니다.
k를 자연수가 아닌 실수를 사용하면 2.8회 또는 7.1회 가입했을 때의 수익률도 계산할 수 있습니다. k값 1의 변화는 6개월이니 k / 6을 사용하면 1개월 단위가 되고, k × 2를 사용하면 1년 단위로 기간이 바뀌게 됩니다.
이제 세 예금 상품의 수익률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6개월 예금보다는 12개월 예금이, 12개월 예금보다는 36개월 예금의 수익률이 높습니다. 물론 예금의 경우 약정 기간이 있기에 임의 시점에 해지하면 불이익이 발생하지만, 해당 은행의 예금 상품은 약정 기간이 길어질수록 높은 수익률을 제강합니다.
그래프에서 만기 이후에 연장되는 선은 해당 상품에 재가입하는 경우 얻을 수 있는 수익률입니다. 6개월 예금의 만기가 도래하면, 다시 동일한 6개월 예금에 가입하는 경우입니다. 현실에서는 이자를 받으면 세금이 발생하고, 시간이 지나면 금리도 변동되니 예금 이자율도 달라지지만, 이를 감안하지 않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률입니다.
이전 글에서 본 결과와 조금 달라 보입니다. 자산의 가격은 복리로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위의 그래프에서는 수익률이 직선으로 보입니다. 예금 금리가 높지 않고, 투자 기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만기를 30년(360개월)까지 늘려서 그려보면 아래와 같은 그래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왼쪽은 선형 스케일로 예금의 수익률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수익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은 로그 스케일입니다. 복리 효과를 선형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좌표축이 변형되었습니다.
CAGR
투자 자산의 수익률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기간을 동일하게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6개월, 12개월, 36개월 예금의 수익률은 6개월 기준으로는 각각 1.6%, 1.7%, 1.9%이고, 36개월 기준으로는 각각 10.0%, 10.9%, 12.0%입니다.
어떤 기간이 무난할까요? 요즘 한국의 직장인의 근로 소득은 연봉으로 비교하는 경우도 있지만, 과거에는 주로 월급으로 가늠했습니다. 매월 동일한 금액의 월급을 받고, 상여금과 성과급이 추가로 지급되는 형태입니다.
매월 필요한 기본 생활비는 어느 정도 일정하기에 월단위는 수입과 지출 규모를 계획하기에 괜찮은 기간입니다. 회사에서도 월단위로 임금을 지급합니다.
요즘은 1년치 월급과 고정된 상여금을 합하여 연봉으로 환산해서 근로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여금 없이 연봉을 12개월로 나누어서 매월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1년 역시 수입과 지출 규모를 계획하기에 괜찮은 기간입니다.
연봉, 월급 이외에 주급이나 일급도 있습니다. 유럽은 주단위로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미국은 격주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종에 따라서는 당일 임금을 지급하는 일급도 있습니다.
임금 지급 간격이나 근로 계약서 상의 용어는 근로 기간의 안정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때그때 단기간 노동력이 필요한 업종일수록 근로 계약 기간과 임금 지급 간격이 짧아질 수 있습니다.
투자는 어떻까요? 매일매일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성과를 확인해야 한다면, 일단위 또는 주단위 수익률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개인 투자자와 같이 본업이 있고, 근로 소득을 부동산 또는 금융 소득으로 변환하여 투자하는 경우에는, 보다 긴 기간이 적절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기간은 1년입니다. 자산의 가격은 복리로 변동되기에 1년 평균 복리 수익률을 사용합니다. CAGR(compound annual growth rate; 연평균 성장률)이라 부릅니다. 은행도 예금이나 적금의 수익률을 연단위로 통일해서 표시합니다. 나신입씨가 만난 은행원도 신입이 아닌가 싶습니다.
CAGR은 로그 스케일로 된 그래프에 직선의 기울기라 볼 수 있습니다. 은행원이 나신입씨에게 설명한 세 가지 예금 상품의 CAGR은 각각 3.2%, 3.5%, 3.8%입니다. 매년 이전 자산 규모 대비 1년 수익률입니다.
정리하며
자산 가격의 규모나 단위가 다른 경우 수익률로 변환하면 자산의 가격 변화를 비교하기 용이합니다. 하지만 자산에 따라서는 투자 기간이 달라 수익률이 크게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마트에서 작은 용량의 우유 한 팩과 큰 용량의 우유 한 팩 가격을 쉽게 비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마트에서는 100ml당 가격을 표시해 둡니다.
수익률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일한 기간으로 환산했을 때의 복리 수익률을 비교하면, 비교가 용이해집니다. 투자에서는 대개 1년을 기준으로 수익률을 비교하며, 이를 CAGR(compound annual growth rate; 연평균 성장률)이라 부릅니다.
이어지는 글: 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 - 4. 장기 투자와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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