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기초 6] 투자 성과는 왜 비교하기 어려울까? (자기야! 다른 매장에 가보자!)

오렌지사과키위 2024. 10. 16. 20:13

나신입씨는 여자 친구 한경력씨와 주말에 데이트를 합니다. 첫 월급을 받았다고 옷을 선물하려고 합니다. 나신입씨는 본인이 쓸 운동화도 살 계획입니다. 알뜰한 한경력씨는 아울렛 매장으로 가자고 합니다. 나신입씨는 유명 브랜드인 나이스(Nice)의 운동화를 좋아합니다. 아울렛에서는 나이스가 작년에 출시한 인기 모델을 할인 판매하고 있습니다. 흰색 운동화를 주로 신는 나신입씨는 265cm, 270cm, 275cm를 신어보고, 가장 편안한 275cm를 선택합니다. 첫 착용부터 결제까지 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한경력씨는 블라우스를 사려고 합니다. 흰색도 입어보고, 연분홍색도 입어봅니다. 디자인이 심플한 옷도 입어보고, 레이스가 화려한 옷도 입어 봅니다. 촉감이 좋은지 만져도 보고, 세탁 방법도 살펴봅니다. 가지고 있는 옷과 비슷한 게 아닌지, 자주 입는 청바지와 줄무늬 치마에 어울리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1시간 동안 소소하게 23번 착용해 봅니다. 중간중간 멍 때리고 있는 나신입씨에게 어울리는지 물어봅니다. 마침내 한경력씨가 나신입씨에게 다가옵니다. 이제 결제만 남았다고 행복해하는 나신입씨에게 말합니다.

자기야! 다른 매장에 가보자! 여긴 마음에 드는 옷이 없네.

나신입씨는 쉽게 선택했는데, 한경력씨는 왜 선택하기 어려웠을까요? 나신입씨는 어떤 운동화 모델을 살지 미리 결정했습니다. 선택에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발 사이즈 한 가지뿐입니다. 직접 신어보고 발이 가장 편안한 제품을 고르면 됩니다.

한경력씨도 마음에 드는 옷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많습니다. 사이즈, 색상, 재질, 계절, 가지고 있는 옷과 비슷한 정도, 다른 의류와 어울리는 정도, 가격 등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머리가 복잡합니다.

투자 성과의 비교도 비슷합니다. 기준이 한 가지라면 선택이 쉽습니다. 기준이 두 가지가 되면 조금 까다로워질 수 있습니다. 셋, 넷, 다섯 등으로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늘어나면 선택이 어려워집니다. 선택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선택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적절한 투자 자산을 선택하기 위해 투자 성과를 비교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 살펴봅니다.

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 또는 특정 전략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과거에 그랬다는 기록이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예상이 아닙니다. 분석 대상, 기간,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가공, 해석 단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설명은 편의상 현재형으로 기술하지만, 데이터 분석에 대한 설명은 모두 과거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나신입씨의 예금 상품 선택

지난주에 제일은행을 방문했던 나신입씨는 오늘 삼삼은행에 방문해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제일은행의 1년 예금 금리는 3.5%지만, 삼삼은행은 같은 약정 기간에 대해 3.3% 이자를 준다고 합니다. 나신입씨가 예금에 가입한다면, 어느 은행의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 숫자 크기만 비교하면 누구나 쉽게 정답을 고를 수 있는데, 무슨 수학 시험 문제처럼 설명하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문제는 수학 문제입니다.

나신입씨는 제일은행의 예금 상품을 선택할 것입니다. 예금 금리가 3.5%(제일은행) > 3.3%(삼삼은행)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단순 수치 비교에 무슨 의미가 두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의미가 있습니다.

투자자인 나신입씨는 기대 수익률이 높은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아래는 나신입씨가 두 예금 상품에 가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률을 기간에 따라 표시한 그래프입니다. 

제일 은행과 삼삼 은행 예금의 기간에 따라 기대 수익률
제일 은행과 삼삼 은행 예금의 기간에 따라 기대 수익률

x축은 예금 기간입니다. 1년짜리 예금이지만, 만기 후 재예치할 수 있습니다. 복리 투자입니다. 세로축은 로그 스케일이기에 복리 효과는 선형으로 변형되어 나타납니다. 제일은행과 삼삼은행의 예금 금리가 미래에도 고정이라면, 예치 기간에 따른 기대 수익률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나신입씨는 당장은 1년짜리 예금에 가입하지만, 언제까지 예금할지 불확실합니다. 1년만 가입하고 주식으로 자금을 옮길 수 있습니다. 5년 이상 계속해서 예금할 수도 있습니다.

나신입씨가 앞으로 예금을 얼마나 오랜 기간 유지할지 알 수는 없지만, 기간이 얼마이든 해당하는 값을 x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일은행과 삼삼은행 중 어느 은행의 예금이 더 높은 수익률을 돌려줄까요?

그래프에서 빨간 점선은 3년, 파란 점선은 7년입니다. 3년을 투자하나, 7년을 투자하나 제일은행의 기대 수익률이 더 높습니다. 그러니 나신입씨는 제일은행의 예금에 가입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나신입씨의 타임머신과 주식 상품 선택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어려워 보이게 꼬아 놓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모든 투자 상품의 선택은 동일한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신입씨는 구입할 운동화 모델과 색상을 미리 정해두었기에 선택이 쉬웠던 것입니다. 예금도 금리가 고정되어 있기에 쉬워 보인 것입니다.

아래는 두 가지 주식 자산의 22년간 투자 성과 추이입니다. 나신입씨는 무엇을 고르는 게 합리적일까요? 참고: 이전 글을 읽어 본 분은 두 자산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산 A, B의 22년간 투자 성과
자산 A, B의 22년간 투자 성과

자산 B의 최종 수익률이 더 높으니 자산 B를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016년에 결정한다면 어떻까요? 2016년에는 자산 A의 수익률이 더 높으니 자산 A를 선택해야 할까요?

나신입씨가 타임머신을 하나 구했습니다. 어떻게 구했는지는 비밀입니다. 그런데 고장 난 타임머신입니다. 타임머신의 작동 버튼을 누르면 나신입씨는 평행 세계로 이동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과 만나면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임머신은 나신입씨를 현재 세계의 2002년부터 2024년 사이 어딘가로 이동시켜 줍니다. 평행 세계에 도착하더라도 나신입씨는 현재 세계의 몇 년도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고장 난 타임머신이기에 임의의 기간이 지나면 현재로 다시 돌아옵니다. 3년 뒤에 복귀할 수도 있고, 10년 뒤에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타임머신을 사용하기 전에 어느 자산에 투자할지 미리 결정할 수 있지만, 그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습니다. 나신입씨는 평행 세계에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투자할 자산으로 무엇을 고르는 게 좋을까요?

2004년으로 이동한다면, 자산 A가 유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0년으로 이동한다면 자산 B가 좋을 듯합니다. 2004년으로 이동하더라도 10년만에 돌아온다면 자산 A가 낫겠지만, 복귀에 20년이 필요하다면 자산 B가 합리적인 선일 듯합니다.

한경력씨가 청바지에는 이 옷이 어울리고, 줄무늬 치마에는 저 옷이 나아 보이기에 선택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앞의 예금 상품 선택과는 달리 절대적으로 좋은 상품이 없습니다.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한 데이터를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지 의아할 수 있습니다. 과거 데이터를 보지만, 투자 결정은 현시점에 내리는 것이고, 그 선택의 결과는 미래가 다가와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4년 이후 두 자산의 가격이 어떻게 변할지 불확실합니다. 가격 변화를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추정하는데 도움이 되는 추가 정보가 없다면, 과거 가격 변동의 특성이 미래에도 유지될 거라 보는 것이 무난합니다.

CAGR로 투자 자산을 선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신입씨가 지난 22년간의 데이터를 살펴보고 CAGR이 더 높았던 자산 B를 선택했다면, 그 결정은 아래와 같이 기하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산 A, B의 22년간 투자 성과와 CAGR
자산 A, B의 22년간 투자 성과와 CAGR

그래프에서 두 점선은 각각 자산 A와 자산 B의 CAGR을 이용하여 그은 기대 수익률입니다. 직선으로 그었으니 앞서 예금 상품의 기대 수익률을 비교하는 문제와 동일해집니다. 언제 투자를 시작해서 얼마나 오래 투자를 진행하든 자산 B가 자산 A보다 유리합니다.

나신입씨가 2016년에 타임머신을 얻어 버튼을 누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신입씨는 2016년까지의 자산 수익률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니 2024년과는 다른 결정을 할 것입니다. 나신입씨는 과거로 돌아가서 자산 A에 투자할 것입니다.

자산 A, B의 2016년까지의 투자 성과와 CAGR
자산 A, B의 2016년까지의 투자 성과와 CAGR

보유한 데이터에서 최종 수익률만 보고 자산 A와 자산 B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추가로 고려해야 할까요? 불확실성입니다. 나신입씨가 과거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서 얼마나 오래 투자할지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거나 적절한 수준의 불확실성을 가정하고 비교해야 합니다.

선택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경력씨가 청바지보다 줄무늬 치마를 입는 빈도가 월등히 높다면, 줄무늬 치마에 어울리는 옷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불확실성이 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다른 뜻입니다.

안다는 것은 정도의 개념입니다. 많이 안다는(정보가 많다는) 것은 불확실성이 낮다는 뜻입니다. 모른다는 얼마나 불확실한지 그 자체도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불확실하더라도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여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참고: 합리적인 선택은 모든 경우에 최적의 선택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최적일 가능성이 높은 선택이라는 뜻입니다.

위의 그래프를 보면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산과 점선 간의 관계입니다. 점선은 자산의 특징을 CAGR로 나타낼 때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을 그린 것입니다. 쭈글쭈글한 자산 수익률의 변동을 양끝에서 잡아당겨 팽팽하게 펴 놓은 것입니다. 

자산이 예금처럼 매년 동일한 복리 수익률을 거둔다고 가정하고, 최종 수익률을 이용하여 자산의 수익률 변화를 근사(approximation)한 결과가 CAGR입니다.

CAGR은 자산의 수익률 추이를 너무 단순화했기에 합리적인 선택에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자산의 수익률 추이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요약하여 추출할 수 있다면, 합리적인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 대표적인 정보가 변동성 같은 지표입니다.

정리하며

자산의 투자 수익률은 예금과 달리 반듯한 형태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들쭉날쭉합니다. CAGR은 자산의 가격이 반듯하게 복리로 증가한다고 가정하고 요약한 수익률 데이터입니다. 한경력씨가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를 때, 사이즈만 보는 것이 아니듯, 자산의 투자 성과도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비교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글: 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 - 7. CAGR은 왜 불완전한 비교 지표일까? 위험 고려의 필요성 (자기! 실망이야!)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도움이 되었다면, 이 글을 친구와 공유하는 건 어떻까요?

facebook twitter kakaoTalk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