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투자 성과 분석을 위해서는 수익률도 중요하지만, 위험도 함께 고려해야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투자자마다 위험에 대한 정의와 강도는 다를 수 있기에 보편적인 표준 위험 지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합리성이 있는 어떤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하에 표준화한 수치를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지난 글: 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 - 7. CAGR은 왜 불완전한 비교 지표일까? 위험 고려의 필요성 (자기! 실망이야!)
철수가 수학 시험을 칩니다. 총 10문항이고 한 문제당 10점입니다. 철수는 7문제를 맞혔습니다. 7문제 × 10점 = 70점을 받았습니다. 높은 점수일까요? 낮은 점수일까요?
문제 하나를 맞추면 10점을 줍니다. 일부분만 맞추면 부분 점수 5점을 준다고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총점은 개별 문제에 대한 점수의 합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총점은 계산이 가능하지만, 철수의 수학 시험 점수가 높은지 낮은지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몇 점을 받았는지 비교해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희는 수학 시험에서 90점을 받았습니다. 영희는 철수보다 수학 점수가 높을까요? 네 맞습니다. 높습니다. 1차원의 수직선 상에 나타낼 수 있는 대소관계가 분명한 수치는 비교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철수와 영희는 다음날 영어 시험을 쳤습니다. 철수는 90점을 받고, 영희는 80점을 받았습니다. 철수는 영어를 잘하는 듯합니다. 수학과 영어 두 과목만 있다면, 철수와 영희 중에서 누구의 종합 점수가 높은 것일까요?
수학 점수는 영희가 높고, 영어 점수는 철수가 높습니다. 과목별로는 누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는 판단할 수 있지만, 수학과 영어를 함께 보면 아리송합니다.
물론 수학 점수와 영어 점수를 합산해서 철수는 70점 + 90점 = 160점, 영희는 90점 + 80점 = 170점이니 영희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합 점수 계산 방법을 정의했기 때문입니다. 동일 비중으로 합산한 것입니다.
영어의 배점이 수학의 2배라면 어떻까요? 철수는 70점 + 90점 × 2 = 70점 + 180점 = 250점, 영희도 90점 + 80점 × 2 = 90점 + 160점 = 250점으로 동일합니다. 영어의 배점 수학의 2배보다 더 높아지면, 철수의 종합 점수가 영희보다 높아집니다.
비교 요소가 둘 이상이면 대소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종합 점수 계산 방법을 명확하게 정의해야 비교가 가능합니다.
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 또는 특정 전략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과거에 그랬다는 기록이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예상이 아닙니다. 분석 대상, 기간,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가공, 해석 단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설명은 편의상 현재형으로 기술하지만, 데이터 분석에 대한 설명은 모두 과거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철수네 반 친구들의 과목별 시험 점수와 종합 점수
철수네 반에는 민수도 있습니다. 민수는 훗날 펀드 매니저가 됩니다. 민수의 수학 점수는 90점, 영어 점수는 70점입니다. 철수, 영희, 민수의 과목별 점수를 2차원 좌표상에 표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수학과 영어 점수 모두 수치가 높을수록 더 좋습니다. (그렇게 이미 정의한 것입니다.) 그래프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그리고 위로 갈수록 점수가 더 높습니다. 문제를 많이 맞힐수록 점수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종합 점수를 정의하지 않아도 영희와 민수는 비교 가능합니다. 영희와 민수의 수학 점수는 90점으로 동일하지만, 영희의 영어 점수가 더 높기 때문입니다. 영희 > 민수로 대소관계가 성립합니다.
철수와 영희는 종합 점수에 대한 정의 없이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영어는 철수의 점수가 높고, 수학은 영희가 높기 때문입니다. 철수와 민수의 점수도 마찬가지 이유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참고: 조건부로는 대소관계가 성립합니다. 철수 > 영희라면 영희 > 민수이기에 철수 > 영희 > 민수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철수 < 민수라면 민수 < 영희이기에 철수 < 민수 < 영희가 됩니다.
수학과 영어의 가중치를 동일하게 주고 합산한 값을 종합 점수로 정의해 봅니다 시험 과목은 2개이지만 종합 점수는 하나의 수치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종합 점수 = 수학 점수 + 영어 점수로 동일 가중 합이기에, 아래와 같이 2차원 좌표계에 종합 점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영희의 종합 점수는 170점이고, 철수와 민수의 종합 점수는 160점입니다. 영희 > 철수 = 민수로 대소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세부 점수를 종합하여 하나의 수치로 변환하는 종합 점수는 목적에 맞게 합리적으로 정의해야 합니다.
위의 그래프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막대자(📏) 하나를 비스듬하게 45도(\) 각도로 기준점 (0,0)에 놓습니다. 그래프의 오른쪽 위 (100, 100)을 향하여 45도 각도로 ↗ 전진시킵니다. 막대자가 움직이는 거리에 따라 점수가 점차 높아집니다. 처음에 만난 학생의 점수가 가장 낮고, 마지막에 만나는 학생의 점수가 가장 높습니다.
막대자의 중간중간 위치를 그래프에서 점선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막대자에는 동시에 여러 학생이 걸칠 수 있습니다. 철수와 민수는 같은 점선상에 있습니다. 철수와 민수의 점수는 동일합니다.
막대자는 2차원 좌표를 1차원 좌표로 변환하는 연산자(operator) 역할을 합니다.
라면기를 사러 간 영희
영희가 좋은 시험 점수를 받았다고 부모님이 용돈을 주셨습니다. 용돈을 받은 영희는 라면기를 사러 삼삼마트에 들렀습니다. 라면기는 커다란 컵 형태로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1인분의 라면을 담기 편리한 그릇입니다. 영희가 방문한 삼삼마트에는 한 가지 종류의 라면기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려진 캐릭터만 다릅니다.
영희는 좋아하는 귀여운 토끼가 그려진 라면기를 골랐습니다. 13,000원입니다. 조금 비싼 듯합니다. 옆에 기린이 그려진 라면기가 있습니다. 토끼만큼은 아니지만 영희는 기린도 좋아합니다. 12,000원입니다.
캐릭터만 다른데 왜 가격에 차이가 나는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 옆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곰이 그려진 라면기가 있습니다. 9,000원입니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듯한 새카만 라면기는 7,000원입니다.
삼삼마트는 라면기의 캐릭터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책정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에는 비싼 가격표를,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는 캐릭터에는 싼 가격표를 붙여 놓았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라면기를 사달라는 아이들의 소박한 요구와 눈물을 곁들인 생떼를 부모는 감히 거역할 수도 응징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영희는 황당합니다. 똑같은 그릇인데 인기 있는 캐릭터라고 더 비싼 가격표를 붙여 놓은 삼삼마트의 상술은 사회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주 학교의 사회 수업의 그룹 토의 주제로 올릴 것입니다.
투자 자산의 수익과 위험
아쉽게도 현실의 투자 상품은 모두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한 모양의 라면기는 기능상의 차이가 없습니다. 캐릭터에 따라 소비자에게 주는 추가 편익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쁜 토끼가 그려진 라면기로 맛있는 라면을 먹는 본인의 멋진 모습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질 것입니다.
아파트를 예로 들어 봅니다. 같은 구조를 가진 24평 아파트는 서울 중심지에 있든, 지방 소도시에 있든, 기능 자체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아파트 자체가 아니라 아파트가 위치한 지역에 따라 추가되는 편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통이 편리할 수도 있고, 학군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큰 공원이 옆에 있을 수도 있고, 한국인이 선호하는 남향일 수도 있습니다. 학군과 마찬가지로 임금이 높은 직장이 밀집된 지역에 가까우면 편익은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편익이 클수록 아파트 가격도 높아집니다. 더 큰 편익을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참고: 시장 파괴적인 상품/서비스는 기존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의 비용 대비 편익을 제공합니다.
투자 상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높은 기대 수익률을 가진 자산은 대체적으로 더 위험합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긴 하지만, 위험한 자산이기에 높은 수익률로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예가 채권입니다. 아래는 평균 듀레이션이 다른 BIL, SHY, IEF, TLT 채권 ETF의 가격 흐름과 MDD(Maximum Drawdown; 최대 손실률)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채권 ETF에서 평균 듀레이션은 보유한 채권의 이자를 고려한 평균 만기입니다. 채권은 만기가 길어질수록 위험이 증가합니다.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1년 뒤에 갚겠다고 할 때보다 5년 뒤에 갚겠다고 할 때 더 높은 연이자를 내야 합니다. BIL, SHY, IEF, TLT의 평균 듀레이션은 각각 0.12년, 1.83년, 7.17년, 16.64년 정도입니다.
상품들의 수익률과 위험을 2차원 평면상에 나타내 봅니다. 수익률은 CAGR을 사용하고, 위험은 MDD를 사용하겠습니다. 데이터를 보는 기간에 따라 CAGR과 MDD가 달라지는데, 가장 긴 전체 기간을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평균 듀레이션이 높아질수록 (BIL < SHY < IEF < TLT) CAGR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위험을 나타내는 MDD 역시 평균 듀레이션이 높아지면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앞서 철수네 반 친구들의 시험 점수는 위로 갈수록 그리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더 좋았습니다. 위험-수익률 그래프에서는 위로 갈수록 그리고 왼쪽으로 갈수록 더 좋습니다. 참고: 평균-분산 모델이라 볼 수 있습니다. 평균-분산 모델 그래프에서는 대개 위험(분산)에 해당되는 값을 x축으로 수익(평균)에 해당되는 값은 y축으로 표시합니다.
그래프에서 다른 점보다 위에 그리고 왼쪽에 있는 점은 없습니다. 종합 점수를 정의하지 않더라도 우위 판별이 가능한 자산의 쌍(pair)은 없습니다. 참고: 지배 원리(dominance priniple)라 합니다.
이제 비교를 위해 종합 점수를 정의해야 합니다. 다시 막대자를 꺼냅니다. 막대자는 어디에 어떻게 놓고 막대자를 어떻게 움직여야 합리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요?
정리하며
대소관계가 뚜렷한 요소 하나만으로 비교한다면 우위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둘 이상이 되면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투자 성과를 분석하고 비교하기 위해서는 수익뿐만 아니라 위험도 고려해야 합니다.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두 가지가 되었으니 우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참고: 수익이나 위험을 다양한 관점에서 파악하면 고려 요소의 수는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한 과목을 잘하면 다른 과목도 잘하는 경향이 발견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절대 시간의 영향일 수도 있고,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투자에서는 그 반대 현상이 발생합니다. 투자자는 높은 수익률을 가진 자산을 선호하지만, 이런 자산은 위험도 높은 경향이 있습니다. 수학 점수가 높은 학생이 영어 점수가 낮은 경향이 있다면, 누가 종합 점수가 높은지 판별하기 어려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어지는 글: 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 - 9. 수익률과 위험을 가상 포트폴리오로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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