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편 마지막 글에서 장기로 투자할수록 투자 수익률이 기대 수익률에 수렴하는 큰 수의 법칙이 있음을 관찰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대 수익률은 CAGR과 같은 기간 대비 평균 수익률이지만, 현실에서는 미리 알 수 없는 수치입니다. 장기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큰 수의 법칙은 동전을 무작위로 계속 던지면 앞면이 나온 횟수의 분포는 점차 퍼지지만, 관찰된 앞면의 확률은 기대치인 절반에 가까워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앞면이 나올 확률이 절반이라는 동전의 특성을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관찰과 추론을 통해 추측할 뿐입니다. 지난 글: 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 - 15. (마지막 편) 장기 투자는 왜 위험이 줄어드는가? (불확실성이 누적될수록 확실해진다고?)
특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원리가 시장 전체 지수를 추종하는 주식형 펀드(ETF 포함)에 장기 투자하라는 조언의 이론적 배경입니다.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이 부류의 투자서는 모두 이 원리를 사례와 통계를 들어가며 세세하게 해설한 것입니다.
1년 뒤에 개별 종목이 오르고 내릴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높은 신뢰도로 확신할 수 있다면 해당 종목에 투자하면 됩니다. 만일 어떤 개인 투자자가 나는 이를 알 수 없고 근로 소득을 만드는 본업에 충실하겠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한 국가의 경제력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여 경제력을 높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국가 경제의 성장과 기업의 성장은 맞물려 있습니다.
기업 전체는 장기적으로 무난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자산인 셈입니다. 그중에서 거래소에서 거래 가능한 주요 기업들의 지분을 분산하여 담은 상품이 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또는 ETF)입니다.
인덱스 펀드의 기대 수익률은 무난할 수 있지만 매일매일 가격이 바뀝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여 기대 수익률에 가까운 성과를 얻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장기 투자입니다. 장기로 투자하면 동전의 앞면이 나올 확률이 절반으로 수렴하는 것처럼 기대 수익률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동일한 기대 수익률을 가진 두 자산이 있다면, 어떤 자산이 기대 수익률 달성에 더 유리한지 판별할 수 있을까요? 만일 가능하다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 또는 특정 전략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과거에 그랬다는 기록이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예상이 아닙니다. 분석 대상, 기간,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가공, 해석 단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설명은 편의상 현재형으로 기술하지만, 데이터 분석에 대한 설명은 모두 과거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KODEX 200와 SPY에 나타난 큰 수의 법칙
아래는 KOSPI 200 지수를 추종하는 KODEX 200과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SPY의 가격 추이 그래프입니다. 배당 재투자를 가정하였습니다. 이전 글에도 여러 번 등장했기에 익숙할 것입니다.
2002년 10월 14일부터 2019년 12월 30일까지 약 17년간의 최종 수익률은 비슷했습니다. 환율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KODEX 200 또는 SPY에 최대 10년까지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었던 수익률 상위 5%, 50%, 95% 순위의 CAGR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x축은 투자 기간입니다. y축은 CAGR입니다. 자산별로 3개의 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KODEX 200 5%는 동일 기간 투자 시 상위 5% 순위의 수익률입니다. SPY 95%는 상위 95%(하위 5%) 순위의 수익률입니다.
3년간 KODEX 200에 투자했다면, 어느 시점에 투자를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연 35% 이상의 복리 수익률을 얻었을 확률이 5%입니다. 점선으로 표시된 중앙값(Median)은 해당 수익률 이상 또는 이하를 거둘 확률이 반반인 위치입니다.
KODEX 200과 SPY 모두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CAGR이 수렴하는 큰 수의 법칙 현상이 나타남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참고: 수렴한다고 설명하지만, 현실에서는 수렴하는 위치인 평균 수익률을 미리 알지 못합니다.
어느 자산이 더 좋은 투자 자산이었을까요? 대략 6년까지는 KODEX 200 95%가 SPY 95%보다 위에 있습니다. KODEX 200의 손실 위험이 더 낮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기간 KODEX 200 5%는 SPY 5%보다 높았습니다. KODEX 200이 큰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KODEX 200은 SPY보다 위험은 덜하면서, 더 높은 수익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중앙값의 양상은 다릅니다. 동일한 최대 6년까지 SPY Median이 KODEX 200 Median보다 지속적으로 위에 있습니다. KODEX 200은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가능성은 높지 않았고, SPY는 더 큰 손실을 발생할 수 있었지만 역시 그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투자 기간에 따른 상대적 우위의 변화
3년간 투자했을 때의 수익률 분포를 나타내면 아래와 같습니다. 주의: 이해의 편의를 위해 수익률을 선형 스케일로 그렸지만, 장기 투자를 하는 경우에는 손익 비대칭성을 고려해서 로그 스케일로 보아야 할 수 있습니다.
KODEX 200의 수익률 분포가 밀집된 구간은 SPY에 비해 왼쪽에 있습니다. KODEX 200은 큰 수익률이 발생하는 빈도가 많았고, SPY는 큰 손실이 발생하는 빈도가 높았습니다. 앞의 5%, 중앙값, 95%는 이 확률 분포를 간략하게 몇 개의 수치로 나타낸 것입니다.
투자 기간이 6년을 넘어가면 KODEX 200과 SPY의 차이는 크게 줄어듭니다. 중앙값은 거의 비슷해졌고, 상위 5%와 하위 5%(상위 95%)의 간격은 SPY가 더 좁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는 9년간 투자한 경우의 수익률 분포입니다.
SPY 수익률 분포가 KODEX 200에 비해 장기 투자에 더 적절해 보입니다. 중앙값은 별 차이가 나지 않지만, 수익률의 분포는 SPY가 덜 위험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신입씨의 고장 난 타임머신
나신입씨가 타임머신을 수리했습니다. 이제 과거로 돌아가서 머무를 기간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완벽히 고쳐진 것은 아니라서 과거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게 될지는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과거로 가기 전에 투자할 자산과 기간을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참고: 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 - 6. 비교: 투자 성과는 왜 비교하기 어려울까? (자기야! 다른 매장에 가보자!)
나신입씨가 손실 가능성을 낮추고 싶다면, 6년 이하인 기간에는 KODEX 200에, 6년 이상의 기간에는 SPY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SPY에 3년간 투자했다면 분명히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꽤 높았습니다. 그런데 9년간 투자하면 왜 손실 가능성이 사라졌던 것일까요?
나신입씨가 타임머신 한 번을 이용하여 9년간 투자하는 것과 세 번을 연달아 이용하여 3년씩 총 9년간 투자하는 것은 다른 것일까요?
정리하며
KODEX 200과 SPY에서도 큰 수의 법칙 현상이 나타났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두 자산 중에서 특정 자산이 견고하게 다른 자산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 셈입니다.
위험이 다른 자산 A와 B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자산 A의 위험이 낮습니다. 장기적로는 어떻까요? 장기 투자는 단기 투자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산 A에 반복해서 투자하면 자산 B에 비해 지속적으로 위험이 낮은 것일까요?
이어지는 글: 투자 성과 분석의 초급 - 3. 위험한 자산은 장기 투자에 불리할까? (기대 수익률과 수익률 분포로 보는 큰 수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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