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관찰되는 어떤 현상의 원리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가설(hypothesis)을 세웁니다. 데이터를 관찰하여 얻은 특징과 연역적 추론으로 수립한 가설은 현실과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현실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인류는 달로 갈 수 없었을 것이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GPS는 실용화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연 과학에서는 가설(또는 이론)로 추측한 결과가 실제와 흡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일고무가 생산하는 고무신 사이즈도 사람의 발 크기 분포가 정규 분포에 가깝다는 점을 이용합니다. 참고: 투자 성과 분석의 초급 - 1. (첫 편) 미국으로 출장 간 전사적 차장 (왜 통계학을 알아야 하는가?)
하지만 금융 시장과 같은 복잡계에서 금리나 주가의 흐름을 명쾌하게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가설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불확성이 존재하며, 불확실성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을 예측하고 고려할 수 없으며, 금융 시장 참여자들은 지속적으로 상호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거시적인 입장에서 대략적으로 이러이러한 경향이 있다는 정도는 가설로 만들어 응용해 볼 수 있습니다. 현실과 상당히 다를 수 있는 가설이겠지만, 전반적인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위험을 위주로 보면, 단기 투자 시에는 KODEX 200이 나아 보였지만, 장기 투자 시에는 SPY가 좋아 보였습니다. 참고: 투자 성과 분석의 초급 - 2. 어느 자산이 투자에 유리했을까? (KODEX 200과 SPY)
해당 설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투자 기간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는 데이터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KODEX 200은 초기에 크게 상승했고 이후 상승률이 낮았습니다. 반대로 SPY는 초기에는 미진했지만, 이후 상승률이 안정적으로 높았습니다.
투자 기간을 짧게 잡으면 KODEX 200의 높은 단기 수익률이 돋보이고, 투자 기간을 길게 잡으면, SPY의 장기 수익률이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단기로는 KODEX 200이 나아 보이고, 장기로는 SPY가 좋아 보였던 한 가지 이유입니다. 물론 장기 투자자라면 긴 기간의 결과를 보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위험(변동성)과 기대 수익률이 높은 자산이 위험과 기대 수익률이 낮은 자산보다 장기 투자에 유리할 수도 있는 현상을 관찰해 봅니다.
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 또는 특정 전략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과거에 그랬다는 기록이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예상이 아닙니다. 분석 대상, 기간,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가공, 해석 단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설명은 편의상 현재형으로 기술하지만, 데이터 분석에 대한 설명은 모두 과거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금과 주식
위험이 없는 대표적인 자산은 예금입니다. 위험이 높은 대표적인 자산은 주식입니다. 예금과 주식의 수익률을 단순한 모델로 추상화해 봅니다.
예금은 연 5%의 고정된 이자를 준다고 하겠습니다. 주식은 40% 상승할 수도 있고, -20% 하락할 수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반반의 확률이라고 하겠습니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산술 평균으로만 계산하면, 주식의 기대 수익률은 연 (40% - 20%) / 2 = 20% / 2 = 10%입니다.
투자 기간이 점차 길어진다면, 상대적인 확률적 우위는 어떻게 변할까요? 참고: 주식은 위험 자산이며, 오랜 기간 투자하더라도 예금보다 낮은 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항상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상 수익률을 자세히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는 확률 분포입니다. 아래는 예금과 주식에 1년 또는 2년 투자했을 때의 수익률 분포입니다. 참고: 히스토그램(도수분포표)을 그리는 라이브러리가 정확한 x좌표 위치를 잡아주지 못하는 있습니다.
1년 투자 시 예금은 5% = [5% × 100%] 수익률을 얻습니다. 주식은 [-20% × 50%, 40% × 50%] 수익률 분포를 얻습니다. 예금이 더 높은 수익률을 받을 가능성이 절반, 주식이 더 높은 수익률을 얻을 가능성이 절반입니다.
2년 투자 시 예금은 5% × 2 = 10% 수익률을 얻습니다. 주식은 [-40% × 25%, 20% × 50%, 80% × 25%] 수익률 분포를 가집니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산술 평균으로 계산합니다.
주식 수익률이 예금 수익률보다 높을 확률은 이전 50%에서 늘어난 75%입니다. 예금보다 낮은 수익률을 얻을 확률은 25%입니다. 주식은 좀 더 위험한 자산이지만, 투자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입니다.
아래는 5년 또는 10년간 투자한 결과입니다.
5년 투자 시 예금은 5% × 5 = 25% 수익률을 얻습니다. 주식은 -20% 수익률을 5번 연달아 얻으면 -100% 수익률을, 40% 수익률을 5번 연이어 얻으면 200% 수익률을 얻습니다. 10년으로 투자 기간이 늘어나면, 주식 수익률의 전반적인 분포는 예금의 오른쪽으로 이동합니다.
투자 기간에 따른 예금과 주식 수익률 분포에서 상위 10%, 50%, 90% 순위에 해당되는 결과를 그려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파란 점선은 예금 수익률입니다. 산술합으로 수익률을 계산했기에 세로축 선형 스케일에서 직선으로 나타납니다. 주식 10%, 주식 중앙값, 주식 90%는 각각 상위 10%, 50%, 90% 순위에 해당되는 수익률입니다. 주식의 1년 수익률 분포가 40% 또는 -20%로 단절되어 있기에 선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분위값에 관계없이 주식의 수익률은 장기적으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주식 수익률 분포가 점차 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평균 수익률로 보면 아래와 같이 큰 수의 법칙 현상이 발생함을 알 수 있습니다.
주식의 수익률 분포가 달라지면 어떻게 될까?
주식의 수익률 40%와 -20%은 그 차이가 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익률 차이가 조금 작은 새로운 주식을 생각해 봅니다. 30% 또는 -10%의 수익률이 발생하는 주식 LV(Low Volatility)입니다. 앞의 주식의 이름은 주식 HV(High Volatility)로 바꾸겠습니다.
주식 LV의 기대 수익률은 주식 HV와 동일한 10%입니다. 하지만 발생할 수 있는 수익률 차이는 작습니다. 그래프에서 보듯 주식 LV는 주식 HV보다 빠르게 기대 수익률을 향하여 모이고 있습니다. 20년 정도 지나면 하위 10% 순위도 예금과 엇비슷한 수익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산의 수익률의 분포가 기대 수익률로 수렴하는 속도와 관련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주식 HV가 20년 정도 걸쳐서 기대할 수 있는 10%와 90% 순위의 수익률 차이를 주식 LV는 10년 정도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어떤 자산의 수익률 분포를 대충이라도 추정할 수 있고, 추정한 수익률 분포를 가공하여 기대 수익률로 수렴하는 속도를 추측할 수 있다면, 투자할 자산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엇비슷한 기대 수익률이라면 빠르게 수렴하는 자산이 장기 투자에 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지난 글에서는 과거로 돌아가서 투자한다고 가정한 시뮬레이션 결과에서 통계량을 추출하였습니다.
이렇게 계산한 값이 비록 현실과 다른 점이 많아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자산 간의 상대적인 비교 정도에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리하며
자산의 장기 수익률은 기대 수익률로 수렴합니다. 큰 수의 법칙이라 불리는 장기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기대 수익률로 수렴하는 속도는 자산마다 다릅니다. 고정 이율을 주는 예금은 처음부터 기대 수익률로 수렴합니다. 주식과 같은 상품은 수렴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참고: 예금 금리도 변하지만 고정이라 간주한 설명입니다.
자산의 장기 수익률이 왜 기대 수익률로 수렴하는지 이해하고, 수렴하는 속도에 투자자가 관여할 수 있다면, 투자 목표에 조금 더 적절한 전략을 세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산의 수익률 분포가 수렴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퉁계학적으로 이를 정형화해서 분석하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요?
이어지는 글: 투자 성과 분석의 초급 - 4. 왜 수익률 모델로 정규 분포를 사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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