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커버드콜 ETF 수익 구조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커버드콜 ETF와 콜옵션 매수자는 기초 자산의 수익을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커버드콜 ETF의 장기 수익률이 기초 자산보다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원인입니다. 커버드콜 ETF는 기초 자산의 수익 일부를 콜옵션 매수자에게 거저로 넘기지 않습니다. 기초 자산의 변동성 일부를 함께 떠넘깁니다. 이로 인해 커버드콜 ETF는 기초 자산보다 조금 낮은 변동성과 조금 낮은 수익률을 얻게 됩니다. 이전 글: 커버드콜 ETF 수익 구조의 본질 - 프리미엄이 대출금이라고? (커버드콜 ETF가 기초 자산보다 수익률이 낮은 이유에 대한 잘못된 설명들)
콜옵션 구매자가 콜옵션 구매 대가로 지급하는 프리미엄이라는 현금은 은행 대출금과 같은 것입니다. 일반적인 대출과의 차이점은 기초 자산의 상승 정도에 따라 상환 금액이 달라지는 조건부 차용증을 쓴다는 점입니다.
어떤 투자자에게는 커버드콜 ETF가 고려해 볼 만한 상품일 수 있지만, 장기 투자를 계획하는 투자자에게는 대개 적절하지 않습니다. 높은 장기 수익률이 기대되는 자산에 충분히 오래 투자하면 상대적 변동성이 줄어드는 큰 수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투자 성과 분석의 기초 - 15. (마지막 편) 장기 투자는 왜 위험이 줄어드는가? (불확실성이 누적될수록 확실해진다고?)
지난 글을 찬찬히 읽은 분도 이해가 될 듯 말 듯 애매할 수 있습니다. 변동성과 돈의 교환이 생소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변동성과 돈의 교환은 경제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봅니다.
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 또는 특정 전략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수치는 과거에 그랬다는 기록이지,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예상이 아닙니다. 분석 대상, 기간,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 가공, 해석 단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부 설명은 편의상 현재형으로 기술하지만, 데이터 분석에 대한 설명은 모두 과거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나신입씨의 예금 상담
나신입씨가 예금 상담을 위해 제일은행에 들렀습니다.
- 은예금: 어서 오세요. 고객님.
- 나신입: 예금 상담하러 왔습니다.
- 은예금: 기간은 어느 정도 보고 계신가요?
- 나신입: 3년입니다.
- 은예금: 3년 만기 예금의 이자율은 연 4%입니다. 100만원을 예금하시면, 매년 이자 4만원을 세후 다른 통장으로 지급해 드립니다.
- 나신입: 오! 예금 이자율이 괜찮네요.
나신입씨 귀에 옆 칸에서 누군가 대출을 상담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 금대출: 어서 오세요. 고객님.
- 전집사: 대출 상담하러 왔습니다.
- 금대출: 기간은 어느 정도 보고 계신가요?
- 전집사: 3년입니다.
- 금대출: 3년 만기 대출의 이자율은 연 6%입니다. 100만원을 대출하시면, 매년 이자 6만원을 내시면 됩니다.
- 전집사: 오! 대출 이자율이 괜찮네요.
나신입씨는 순간 혼란에 빠집니다. 같은 은행에서 똑같은 돈인데 나는 왜 4% 이자를 받고, 저 사람은 왜 6% 이자를 내야 하는지 이상합니다. 옆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은행원에게 물어봅니다.
- 나신입: (작은 목소리로) 저. 은행원님. 예금 이율과 대출 이율은 왜 차이가 나지요? 제가 저분에게 5%로 대출하면, 저는 1% 이자를 더 받고, 저분은 1% 이자를 덜 내도 되잖아요.
- 은예금: (역시 작은 목소리로) 저희 제일은행이 위험을 떠안기 때문입니다. 저분이 대출 이자와 원금을 상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의 대출 고객님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누구나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일은 생길 수 있으니까요.
- 은예금: 고객님의 예금에 4% 이자와 원금을 돌려주겠다고 저희 은행이 보장한 것입니다. 2차 보증을 위해 예금자 보호를 위한 보험에도 가입합니다.
- 은예금: 고객님의 예금은 안전하게 이자와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기에 이자율이 4%이고, 저분의 대출은 그런 보장이 없기에 이자율이 6%인 것입니다. 대출 상환율까지 고려해서 저희 은행이 얻는 실질 대출 수익률은 5%입니다.
- 나신입: 그러니까, 은행은 대출자의 상환 불이행 위험을 떠안는 대가로 4% 예금을 받아 6%로 대출하지만, 평균 5% 수익을 얻는 것이군요?
- 은예금: 맞습니다. 저희가 5% 수익을 받으면, 4%는 예금자에게 돌려줍니다. 남은 1% 중에서 임직원 월급이나 매장 임대료 등 각종 경비를 제하면 0.5%가 남습니다. 0.5%가 저희 은행의 실질 수익입니다.
- 나신입: 떼일 수 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6% 대출을 하거나, 아무런 위험 없이 4%를 받는 것 중에서 선택하는 문제가 되는군요.
- 은예금: 정확하게 이해하신 것입니다. 예금에 가입하시겠습니까?
예금 = 대출 - 변동성 - 은행의 수익
예금 자체는 수익을 만드는 상품이 아닙니다. 돈은 필요한 누군가에게 빌려줘야 수익이 발생합니다. 수익이 생길 수 있으면 크든 작든 위험도 함께 발생합니다. 참고: 1금융권 예금이나 국채는 위험이 극히 낮기에 무위험 자산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위험이 극히 낮은 것이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은행은 6% 수익률이지만 위험이 있는 대출 상품을 위험이 없는 예금 상품으로 변환하고, 그 수수료를 받는 사업을 합니다. 은행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대출 상환에 문제가 없다면 6% 수익률을 얻을 것입니다. 원금만 상환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0% 수익률이 됩니다. 절반쯤 상환하다 파산한다면 -50% 수익률이 됩니다. 예상했던 6% 수익률에 미달하는 경우를 위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 위험은 기준에 따라 다릅니다. 대출에 대한 위험 기준을 평균 수익률인 5%로 둘 수도 있습니다.
은행이 대출로 평균 5% 수익률을 얻는다고 하니 나신입씨도 욕심이 납니다. 나신입씨가 조금이라도 더 이자를 받기 위해 직접 대출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대출을 희망하는 후보자가 10명입니다.
대부분의 대출자는 원금과 이자를 모두 상환하기에 수익률이 6%일 것입니다. 일부 이자를 상환하지 못한 대출자에게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은 5%나 4%가 될 수 있습니다. 원금도 일부 상환하지 못한다면 -10% 수익률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나신입씨는 누구에게 대출을 해 줘야 할까요? 아래와 같이 수익률의 확률 분포를 살펴봅니다.
나신입씨가 직접 대출을 해준다면, 6% 수익을 얻을 확률이 80%, 4% 수익을 얻을 확률이 10%, -2.0% 손실이 발생할 확률이 10%입니다. 파란색 막대입니다. 은행처럼 여러 명에게 한꺼번에 대출을 한다면 오렌지색 막대처럼 평균인 5%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신입씨는 은행처럼 많은 대출자를 만나서 소액으로 대출해 줄 수 없습니다. 이자가 늦어지면 독촉을 한다거나, 원금 상환을 하지 않을 경우 법적 절차를 밟기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니 나신입씨는 대출로 5% 수익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다소 위험을 감수하고 6% 수익을 노리거나, 은행 예금으로 안전하게 4% 수익을 받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은행의 선택은 파란색 확률 분포를 모아서 오렌지색 확률 분포로 바꾸는 것입니다. 위험은 줄어들고 수익은 평균이 됩니다. 참고: 은행의 수익률 분포가 5%로 확정된 것처럼 설명하지만, 실은 수익률 분포가 좁아집니다. 대출자가 어느 정도 상환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나신입씨가 예금에 가입하면, 파란색 확률 분포를 모아서 초록색 확률 분포로 바꾸는 것이 됩니다. 은행과 마찬가지로 위험은 줄어들었지만, 수익은 은행보다 낮아집니다.
나신입씨가 예금에 가입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직접 대출하면 수익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변동성)이 있습니다. 이 불확실성을 은행으로 넘긴 것입니다. 그 대가로 평균적으로 받은 수 있는 대출 수익 5% 중에서 1% 수익을 은행에게 지급하고 4%만 받습니다. 은행은 받은 1% 중에서 0.5%는 경비로 사용하고 나머지 0.5%를 수익으로 가집니다. 그 대신 나신입씨의 수익률 불확실성을 가져갑니다.
대출에서 위험은 확률 분포로 표현되는 수익률의 불확실성입니다. 수익률의 불확실성을 수치로 형식화하면 변동성이 됩니다. 변동성의 대표적인 계산 방식 중 하나가 표준편차입니다. 금융 공학에서는 모델을 간략화하여 수치적으로 쉽게 접근하기 위해 위험을 표준편차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참고: 다르게 말하면, 복잡하더라도 합리적인 확률 분포를 유추하고 연산할 수 있다면, 확률 분포를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 됩니다.
황사장과 조사장
주식 투자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합니다. 황사장은 멀지 않은 미래에 AI 시대가 열릴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능력 있는 연구원을 모아 엔비디냐라는 회사를 차렸습니다. 참고: 사장과 회사 이름이 현실과 유사한 것은 우연입니다. 여긴 평행 세계입니다.
창립 멤버들이 각출하여 모은 자금으로 몇 년간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듯한데, 자금이 바닥났습니다. 황사장은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색 가죽 잠바를 걸치고, 부호로 소문난 조사장을 찾아갑니다.
- 황사장: 조사장님. 저희 좀 도와주십시오. 앞으로 3년만 더 개발에 투자하면, 전 세계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불러일으킬 AI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 조사장: 황사장님. 저도 황사장님의 프레젠테이션에 감명받았습니다. 제가 투자하겠습니다. 얼마나 필요한지요?
- 황사장: 인건비와 개발비 등 고정비로 매년 100억원이 필요합니다.
- 조사장: 알겠습니다. 제가 매년 100억원을 투자하겠습니다. 수익이 나면 어떻게 나누는 게 합리적일까요?
- 황사장: 연구 개발은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익이 발생하면 고정비용 100억원을 먼저 제해야 합니다. 남은 잉여 이익 중에 절반을 받는 게 어떤지요? 나머지 절반은 업계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추가 투자와 그간 고생한 임직원에게 보상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조사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정리하면 이렇게 되겠군요. 매해 이익이 없거나 100억원 이하의 이익이 발생하면, 다음 해 개발을 위해 제가 100억원까치 채워 드리겠습니다. 100억원 이상의 이익이 발생하면, 추가 이익 중 절반을 저에게 배당해 주십시오.
- 황사장: 좋습니다. 여기 계약서가 있습니다.
조사장의 투자는 어떤 수익 구조를 가져고 있을까요? 아래 그래프와 같습니다.
조사장은 황사장의 엔비디냐의 수익 정도에 따라 수익(배당) 또는 손실(투자)이 발생합니다.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 이익도 발생하지 않으면 100억원을 투자해야 합니다. 매출이 발생하더라도 이익이 충분하지 않으면, 다음 해 고정비 100억원이 채워지도록 모자란 만큼 투자해야 합니다.
100억원 이상 이익이 발생하면, 고정비 100억원을 제한 나머지의 절반을 배당받습니다. 500억원의 수익이 발생하면 (500억원 - 100억원) / 2 = 400억원 / 2 = 200억원의 배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 엔비디냐를 기초 자산으로 간주하면, 조사장의 수익 구조는 커버드콜과 비슷해 보입니다. 엔비디냐의 손실은 그대로 떠안고, 수익은 절반 정도만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조사장의 투자는 잘못된 것일까요?
조사장이 3년간 매년 100억원을 투자했다고 하겠습니다. 4년째에 상품화에 성공한 엔비디냐는 수익이 100억원에 이르렀습니다. 조사장은 더 이상 추가 투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엔비디냐가 계속 성장해서 매년 1,000억원의 수익이 난다면 조사장은 매년 450억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투자금 300억원 대비 150% 수익을 매년 배당으로 받게 됩니다.
조사장은 무슨 일을 한 것일까요? 물론 조사장이 황사장의 엔비디냐의 미래를 제대로 이해하고 투자를 결정했으며, 결과적으로 엔비디냐가 성공했기 때문에 투자 수익을 거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왜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을까요?
조사장은 엔비디냐가 성공하지 못해 투자금 전액이 손실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매출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매년 100억원씩 3년간 투자했습니다. 자칫 지금까지의 투자금이 모두 휴지가 될 수 있는 위험을 떠안은 것입니다.
조사장이 위험을 떠안은 대가로 받은 것은 미래 이익에 대한 지분입니다. 그렇다면 조사장은 커버드콜 ETF처럼 위험을 전가하면서 수익률을 낮춘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위험을 넘겨받았기에 수익률이 높아진 것입니다. 참고: 불합리한 위험을 감수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참고: 엔비디냐의 수익 중에서 고정비와 조사장 배당금, 그리고 임직원 보상비를 제하면 엔비디냐의 실질 수익입니다. 조사장의 수익은 엔비디냐보다 높습니다. 조사장의 수익 곡선은 엔비디냐보다 위에 있습니다.
예금과 보험
조사장의 투자와 수익 구조는 비슷해 보이지만, 정반대로 동작하는 상품도 있습니다. 바로 적금(또는 예금)과 보험입니다. 두 상품 모두 가입자가 매달 소액을 지출합니다. 적금은 만기에 목돈이 생기는 상품이고, 보험은 만일의 상황에서 목돈이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상품입니다.
적금과 보험에서 누가 장기적으로 수익을 얻을까요? 은행과 보험사입니다. 가입자가 아닙니다. 참고: 가입자가 적금과 보험으로 얻을 수 있는 편익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은행과 보험사는 왜 돈을 버는 것일까요? 적금은 직접 대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 위험을 제거한 상품입니다. 보험은 만일의 사고에서 발생할 수 있는 큰 지출 위험을 없애줍니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은행과 보험사가 떠안습니다. 그 대가로 가입자에게 수수료를 받는 상품이 적금과 보험입니다.
정리하며
모든 금융 상품은 수익의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부 금융 상품은 불확실성을 제거하거나 적절히 낮춰 투자자에게 판매됩니다. 불확실성 즉 변동성을 낮추는 것은 공짜가 아닙니다.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커버드콜 ETF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초 자산의 변동성 일부를 콜옵션 매수자에게 넘긴 상품입니다. 커버드콜 ETF는 그 대가로 기초 자산의 수익 일부를 변동성과 함께 넘깁니다.
커버드콜 ETF가 모든 변동성을 콜옵션 매수자에게 넘기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기초 자산의 변동성을 모두 제거했으니, 고정 금리를 제공하는 예금(또는 채권)과 같은 상품이 됩니다. 현실에 그런 상품이 있습니다. ETF 구성 종목 목록에서 한 번씩 볼 수 있는 스왑(swap)이라는 상품입니다.
투자자가 직접 만들 수도 있습니다. 기초 자산에서 변동성을 조금씩 제거할수록 예금에 가까워집니다. 그러니 투자자가 기초 자산과 현금(예금)을 혼합하면 커버드콜 ETF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매달 주는 분배금 자동 지급 서비스만 제외하면 거의 동일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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