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기업에 투자한다는 착각 (주식 투자금은 어디로 흘러갈까? 발행시장과 유통시장)

오렌지사과키위 2024. 2. 27. 18:06

주식 투자 입문서를 읽다 보면, 주식 투자를 미래의 이익을 기대하고 기업에 투자하는 행위처럼 묘사해 놓은 경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주식에 대한 설명에 이어서 나오는 경우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마치 주식을 매수하면 그 투자금이 해당 기업으로 흘러가고, 기업은 이 투자금을 활용하여 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보유한 주식을 팔면, 그 판매 대금은 내가 받으니까요. 배당을 포함한 시세 차익을 기대하며 주식과 돈을 교환하는 행위가 주식 투자입니다.

이 글에서는 주식에 투자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돈의 흐름 측면에서 살펴봅니다.

발행시장

주식은 발행시장 또는 유통시장에서 거래됩니다.

참고: 주식과 투자금의 관계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상황을 단순화하였습니다. 주식회사의 설립, 기업공개(IPO) 및 상장(listing)에는 엄격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추가 투자금 확보 시 기존 주식에 대한 가격 산정은 추가 투자금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친구 5명이 모여서 사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최근 각광받는 생성 AI(인공지능)를 이용한 맞춤형 동영상 강의 서비스입니다. 수업을 받는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강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유명 보이그룹 멤버를 강사로 고르고, 5가지 난이도 중에서 난이도 중상을 선택하고, 유머스러운 강의 진행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1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각자 2천만원씩 출자했습니다. 주당 1만원씩 총 1만주를 발행해서 2천주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1주당 1만원이며, 시총은 1억원입니다.

6개월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개발에 매달려서, 그럴듯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습니다. 벤처 투자자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에 참가해서 괜찮은 평가도 받았습니다.

상업화 가능한 수준의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5억원의 추가 투자금이 필요합니다. 프로토타입 시연에 좋은 인상을 받은 어느 벤처 투자자가 투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업 성공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졌기에, 1주당 가격은 초기 1만원보다 높아집니다. 기존 주식을 1주당 5만원으로 계산하고, 추가 투자금 5억원은 신규 주식 1만주를 발행하여 교환합니다. 엄밀하게는 추가 투자금을 고려하여 주당 가격이 결정됩니다. 여기서는 이해의 흐름을 위해 이에 대한 설명을 생략합니다.

이제 발행한 주식의 수는 총 2만주입니다. 주당 5만원으로 평가받으니, 시총은 10억원이 됩니다. 시총은 10억원이지만, 투자금은 5명이 투자한 1억원과, 벤처 투자자가 투자한 5억원을 합해 총 6억원입니다. 시총과 투자금은 다른 것입니다.

신규 개발자를 충원하고 상업화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결과, 6개월 후에 상업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투자금의 일부는 상담과 홍보에도 사용하였습니다. 적극적인 홍보와 강의 효과가 높다는 평가에, 3개월 만에 10만명의 회원을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흑자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전망이 밝은 것을 눈치챈 경쟁 업체들도 비슷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시장 선점과 규모에 의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빨리 장비와 인력을 추가 확보하고, 콘텐츠도 확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대규모의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상장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업공개는 상장 전 단계라 할 수 있지만, 일반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공개와 상장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여기서는 상장으로 설명합니다)

사업의 성장세가 가팔라서, 기업 평가 결과 주당 100만원의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1주의 가격이 너무 높으면, 일반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모집하는데 불리할 수 있으니, 1 : 100으로 액면분할을 합니다.

친구들은 각자 20만주씩 보유하게 되고, 벤처 투자가는 100만주를 보유하게 됩니다. 1주의 액면가는 1백원이고, 가격은 1만원입니다. 시총은 200억원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상장으로 모집할 투자금은 200억원입니다. 주당 1만원이니, 총 200만주의 신주를 발행합니다. 공모 경쟁률이 1 : 1,000으로 성공적으로 상장이 되었습니다. 총발행 주식수는 400만주이며, 시총은 400억원입니다. 이 기업에 투입된 투자금은 초기 1억원 + 벤처 투자자 5억원 + 일반 투자자 200억원으로 총 206억원입니다.

여기까지가 발생시장입니다.

유통시장

상장 첫날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공모가 1만원의 2배인 2만원으로 장마감하였습니다. 기업에 얼마의 투자금이 신규 유입된 것일까요?

0원입니다.

기업에 대한 추가 투자금은 공모에서 결정된 것입니다. 이후의 주식 거래는 발행시장이 아닌 유통시장에서 이루어집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자사주 매도나, 유상 증자로 기업이 추가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이는 발행시장의 연장으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유통시장에서의 주식 거래는 기업의 투자금 확보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하나 팔면 매출이 늘어나지만, 자동차를 사간 사람들이 서로 중고거래를 하는 것은 매출과 관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유통시장에서의 주식 거래는 다른 투자자와 거래하는 것이지 기업과 거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장 당일 매수해서 10년간 묵혀두든, 1년 뒤에 다른 종목으로 교체를 하든, 초단위의 단타를 치든, 기업 입장에서는 모두 동일합니다. 기업의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아닙니다.

물론 주식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자산을 불리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은행에 넣으면 연 3%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돈을, 이 기업의 주식에는 연 10%를 기대하며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의 지분인 주식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유통시장에 대한 오해로 인한 착각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간혹 오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주식 매매와 기업에 대한 투자

재무제표를 면밀히 분석하고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서 주식을 매매하는 행위는 기업에 도움이 되는 투자이고, 주가가 오르거나 내리는 패턴을 보고 단기 매매하는 행위는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투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 다 같은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중고차를 사고파는 투자자는 이득이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지만, 자동차 기업의 매출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예금과 기업에 대한 투자

은행에 예금을 하면 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금을 하면 은행은 이자를 지급하는데, 그 이자를 어떻게 마련할까요?

예금은 가계나 기업에 대출하여 생긴 이익을 예금주와 나누는 투자 상품입니다. 그러니 예금을 하면 자연히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기업에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이율로 그리고 더 많은 자금이 공급됩니다.

정말 기업 그 자체에 투자하고 싶다면, 발행시장에 참여하거나, 예금을 해야 합니다.

정리하며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에서의 주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투자는 본인의 자산을 늘리기 위한 경제 행위입니다. 그러니 주식 투자는 분명히 투자가 맞습니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투자는 아닙니다. 글자 그대로 주식이라는 기업의 소유권에 대한 투자입니다.

실제 기업에 투자하는 사람은 발행시장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매수한 사람들과, 해당 기업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입니다. 이들이 기업의 부가가치 생산을 도와 기업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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