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대주주는 정말 배당소득세율이 높아서 배당을 싫어하는 것일까? (대주주와 배당 그리고 자사주 매입)

오렌지사과키위 2024. 4. 18. 16:43

한국 기업의 주가가 장기간 저평가 상태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의 하나로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이하 대주주)에게 부과되는 세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배당소득세율이 높기 때문에 대주주가 배당을 꺼리고, 상속세율이 높기 때문에 합리적인 주가 부양을 등한시한다는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 기업의 주가가 장기간 저평가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향후 따로 글을 쓸 기회가 있겠지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시장 전반에 걸쳐 저평가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기는 어렵습니다. 저평가란 다르게 말하면 고수익을 의미하는데, 장기간 고수익이 발생하면, 복리 효과에 의해 자산이 크게 상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높은 배당소득세율이 배당을 주저하는 원인이 될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배당소득세

배당소득은 금융소득의 하나입니다. 금융소득에는 이자소득도 포함됩니다. 금융소득이 2천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국세 14%와 지방세 1.4%가 부과되어, 총 15.4% 세금을 내야 합니다. 아래에서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 국세의 10%로 부과되는 지방세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대주주라면 2천만원을 훌쩍 넘어서는 배당금을 수령할 것입니다. 누진세가 적용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되며, 금융소득이 10억원을 초과한 소득에 대해서는 45%의 세율이 적용됩니다. 대주주가 배당금을 받는다면, 높은 실효 세율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천억실업

천억실업은 시가총액이 1천억원인 회사입니다. 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나천억씨가 3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천억실업의 업종은 과거에는 성장산업이었지만, 지금은 성장이 정체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사양산업은 아닙니다.

고성장 시기에는 기업의 이익을 재투자하여 매출과 이익을 키워왔습니다. 이제는 시장이 안정화되어 완만하게 성장하기에 주주환원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주주가 소액주주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투자 효율 때문입니다.

기업이 이익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느냐는 주주의 이익과 관련이 없습니다. 주주의 이익은 투자된 자산의 세후 수익률에 달려 있습니다. 참고: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가가 오를까? (주주환원: 재투자, 배당, 자사주 매입, 자사주 소각)

(계산의 편의를 위해 모든 수치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현재 가치로 설명합니다. 은행 예금 이율은 물가상승률과 동일하며, 실질 이율은 0%라고 하겠습니다.)

천억실업의 자산과 시총은 모두 1천억원으로 PBR은 1입니다. PER가 20이라면, 1년에 50억원의 순이익을 만들어 냅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천억실업은 현상 유지 상태입니다. 천억실업은 매년 현재가치 1천억원의 자산으로 현재가치 50억원의 순이익을 냅니다. 은행 예금 금리가 0%이니 알짜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은 정체되어 있기에, 순이익 50억원은 은행에 예금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신사업에 진출한다거나, 타사 주식을 포함한 다른 자산에 투자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치겠습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

재투자를 제외했을 때, 천억실업이 순이익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입니다.

나천억씨의 지분은 30%입니다. 50억원 × 30% = 15억원의 배당금을 받게 됩니다. 실효 배당세율을 40%로 잡는다면, 15억원 × 40% = 6억원의 배당소득세를 내야 합니다. 세금이 아깝습니다. 대주주인 나천억씨는 배당 결정을 내리는데 주저할 수 있습니다.

나천억씨가 세후 배당금 15억원 - 6억원 = 9억원을 받아 은행 예금에 넣게 되면, 자산은 매년 9억원씩 불어나게 됩니다.

나천억씨는 세후 배당금 9억원을 천억실업과 동일한 수준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부동산 같은 자산은 좋은 투자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천억실업은 배당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다. 자사주 매입입니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배당금이 주가에 녹아들어 가는 효과가 납니다. 자사주는 의결권과 배당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천억실업이 자사주 50억원치를 시장에서 매수한다고 하겠습니다. 결산 후 시총은 순이익 50억원을 포함하여 1,050억원이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50억원치는 50억원 / 1,050억원 = 4.76%입니다.

나천억씨는 주식을 팔지 않았기에, 지분은 30%에서 30% / (1 - 4.76%) = 31.5%로 늘어납니다. 자사주 매입 비율과 동일하게, 보유 주식의 4.76%를 매도해도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30% 지분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보유 주식의 4.76%를 매도하면 배당과 동일한 금액인 15억원의 현금이 생깁니다. 양도소득세율이 25%라면, 15억원 × 25% = 3.75억원의 세금을 납부하게 됩니다. 세후 15억원 - 3.75억원 = 11.25억원이 생깁니다.

세금 측면에서  자사주 매입은 배당보다 대주주에게 유리합니다. 

자사주 매입과 과세 이연

천억실업이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한다면, 주가는 매년 5% 복리로 상승합니다. 14년이 지나면 주가는 2배가 됩니다. 천억실업은 순이익을 자사주 매입으로 사용했기에, 시총과 순이익은 동일하게 유지됩니다. 주가가 2배로 올랐으니 총발행주식 중에서 절반이 자사주가 됩니다. 참고: 100억원짜리 기업을 1조원으로 만드는 법 (자사주 매입과 시가총액, 그리고 제빵 오형제)

나천억씨는 14년간 주식을 하나도 팔지 않았다고 하겠습니다. 지분은 30%에서 60%로 늘어납니다. 절반을 팔아도 경영권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14년간 천억실업이 계속 배당한다면, 나천억씨는 15억원 × 14년 = 210억원의 세전 배당금을 받게 됩니다. 배당소득세로 210억원 × 40% = 84억원을 납부합니다. 은행 예금만 고집했다면, 보유 자산은 210억원 - 84억원 = 126억원이 됩니다.

천억실업이 계속 자사주를 매입한다면, 나천억씨의 지분은 60%이고, 이 중에서 절반인 30%를 팔 수 있습니다. 매도할 지분 30%의 가치는 1천억원 × 30% = 300억원입니다. 양도소득세율 25%가 적용되면, 300억원 × 25% = 75억원의 세금을 납부하게 됩니다. 세후 300억원 - 75억원 = 225억원이 됩니다.

양도소득세가 배당소득세보다 적을뿐더러, 세후 금액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한해에 배당을 하는 경우에는 9억원, 자사주 매입 + 양도를 하는 경우에는 11.25억원이 됩니다. 전자는 후자의 9억원 / 11.25억원 = 80%입니다.

14년간 배당을 하는 경우는 126억원, 14년 동안 자사주 매입 + 마지막해 양도를 하는 경우는 225억원이 되었습니다. 전자는 후자의 126억원 / 225억원 = 56%입니다.

자사주를 꾸준히 매입하다가, 큰 자금이 필요할 때 보유 주식을 매도하여 현금화하는 게 대주주인 나천억씨에게 유리합니다.

장기 투자 시 배당소득세율을 낮추면 대주주에게 유리한가?

배당소득세율을 낮추면 어떻게 될까요? 장기 보유 시 누진세가 적용되지 않고 특별히 낮은 10% 세율로 분리과세된다고 하겠습니다. 한 해를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세율이 낮은 배당이 유리합니다. 앞의 경우처럼 14년을 보면 어떻까요?

나천억씨는 15억원 × 14년 = 210억원의 세전 배당금을 받게 됩니다. 배당소득세로 210억원 × 10% = 21억원을 납부합니다. 은행 예금만 고집했다면, 보유 자산은 210억원 - 21억원 = 189억원이 됩니다.

배당소득세가 양도소득세보다 훨씬 적어졌지만, 세후 금액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물론 나천억씨는 이전보다 배당소득세가 크게 줄어들기에, 배당에 대해 보다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나천억씨가 세후 배당금을 쓸 곳이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나천억씨가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해 많은 현금이 필요하다면, 배당을 받든 보유 주식을 매도하든 어떻게든 마련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은행에 적금을 드는 것처럼 꾸준히 자사주 매입을 하다, 필요할 때 배당 또는 양도 중에 유리한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주주는 왜 자사주 매입도 좋아하지 않을까?

대주주에게 부과되는 배당소득세율은 금융소득종합과세가 되기에 분명히 낮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유리한 자사주 매입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몇 가지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기업의 배당 여력이 일반 주주의 생각과는 달리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국내 상당수 기업은 실적의 편차가 심합니다. 한두해 실적이 좋았다고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으로 순이익을 소모해 버리면, 실적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줄어들게 됩니다.

두 번째는 대주주가 현금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속세 납부와 같이 큰 자금이 필요한 일이 발생하면, 대주주는 배당을 결정하거나 주식을 매각합니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생활이 안정적인데 굳이 주주환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현금이 필요한 다른 주주들은 주식을 매각해서 마련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기업에 현금이 많아야 대주주 일가에게 유리한 행위를 해도 부담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대주주 일가가 해당 기업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면, 능력 이상으로 임금을 지불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임으로 볼 수도 있는 경영 활동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기업에 현금이 충분하지 않다면, 이런 행위를 떠올리거나 시도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참고 기사: 재벌 ‘핏줄 프리미엄’…승진은 편하고 경영은 무책임

정리하며

대주주가 배당에 소극적인 이유를 나름대로 살펴보았습니다. 배당소득세율이 높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사주 매입이라는 대안이 존재합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은 기업의 순이익을 소모하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행위입니다. 상대적으로 자사주 매입이 대주주에게 더 유리한 주주환원 방법입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대주주가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업 미래의 알 수 없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경영상의 판단일 수도 있고, 대주주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자산을 배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장기 투자 시 배당소득세율을 낮추거나, 분리과세하는 것은 배당 성향을 높이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지금도 가능한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영향은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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