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투자 입문서에서 투자 전략의 하나로 자산 배분 투자를 소개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주식과 채권은 장기적으로 음의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주식과 채권을 6 : 4 비중으로 투자합니다. 1년에 한 번씩 본래 비중을 맞추는 리밸런싱을 합니다.
책에서 자산 배분 투자의 목적은 비교적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장기적으로 자산을 안정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왜 자산을 안정적으로 증가시켜야 할까요?
주식과 채권을 6 : 4 비중으로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거 데이터를 이용한 백테스트 결과로 볼 때 6 : 4 비중이 안정성 대비 수익률이 괜찮았기 때문일까요? 물론 다른 비중으로 투자하는 경우나, 주식과 채권 이외의 투자 자산도 소개합니다.
공무원인 철수는 많지는 않지만 실직 위험 없이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월급은 일종의 채권 이자인 셈인데, 채권에 40%나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요?
스타트업 기업의 창립 멤버인 영희는 회사 지분을 5%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식에 상당한 비중으로 투자한 셈인데, 60% 자산을 주식에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요?
자산 배분 투자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주의: 이 글은 특정 상품에 대한 추천의 의도가 없습니다. 이 글은 자산 배분 투자 전략을 기계적으로 따르기보다는, 투자자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유리하도록 변형할 필요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모든 투자자에게 유리한 하나의 자산 배분 투자 전략은 없습니다. 글에서 설명하는 주식/채권에 대한 투자는 시장 대표 주식/채권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투자하는 것을 가정합니다.
자산 배분 투자의 목적
자산 배분 투자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장기적으로 자산을 안정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함입니다. 자산을 왜 안정적으로 증가시켜야 할까요? 이는 위험(risk)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자산 운용에서 위험은 단순히 자산의 금전상의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산을 이용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위험입니다.
10년 내에 집을 마련하려는 철수
철수는 많지 않은 월급을 쪼개 투자하고 있습니다. 10년 내에 자그마하더라도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떤 경우 이 목표 달성에 실패할까요?
10년 동안 중간중간 맘에 드는 매물이 좋은 가격에 나왔는데, 보유 자산이 부족하여 살 수 없는 경우입니다.
철수는 주식에 100% 투자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주식은 채권에 비해 수익률이 높습니다. 8년 정도 투자했을 때, 한국에 불황이 닥쳤습니다. 집값도 어느 정도 하락할 테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철수는 집을 장만할 수 있을까요?
8년간 투자 성과가 충분히 좋아서 자산이 이미 많이 불어났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불황이니 보유한 주식의 평가액도 최고점에 비해 꽤 줄어든 상황일 수 있습니다. 주택 마련을 위해서는 대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경기가 좋지 않으니 대출 한도가 작거나, 금리가 낮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철수에게는 10년 내에 운이 좋으면 집을 2채 장만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집을 장만할 수 없는 투자가 적절할까요? 아니면, 집을 1채 장만할 가능성이 높은 투자가 적절할까요?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위험을 느끼는 정도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평균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주식의 수익률이 높습니다. 자산이 얼마나 불어날 것인가만 따진다면, 주식에 100%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 달성 여부의 관점에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 철수는 주식의 비중을 조금 줄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철수는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가?
철수는 어떤 주식에 투자해야 할까요? 국내 주식과 미국 주식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두 자산의 장기 수익률은 동일하다고 하겠습니다.
국내 주식에 투자하면 앞의 상황에서 내 집 마련이 가능할까요? 미국 주식에 투자한 경우보다 그 가능성이 낮습니다. 경제 위기가 한국에만 국한될 수는 있어도, 미국에만 한정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에 경제 위기가 닥치면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환율이 올라갑니다. 국내 주식과 미국 주식이 동일한 수준으로 하락하더라도 평가액은 달라집니다. 미국 주식이 원화 환산 시 평가액이 더 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철수는 미국 주식에 비중을 높여 투자해야 합니다.
채권은 어떻까요? 마찬가지로 장기 수익률이 비슷한 원화 채권과 달러화 채권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불황이 닥치면 신규 채권의 발행 금리는 일시적으로 높아집니다. 돈을 융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더 높은 이자를 주더라도 자금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철수가 보유한 채권은 일시적으로 가격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낮추면, 보유한 채권의 가격은 반등하고, 철수의 채권은 평균 만기에 따라서는 상당한 수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금리가 떨어지면 부동산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이전보다 낮은 이자 부담으로 부동산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유한 채권의 가격은 오르고, 부동산은 아직 약세일 때 집을 장만하면 좋겠지만, 시기를 맞춘다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철수가 보유한 채권이 달러화 채권이라면 환율이 울라간 상태입니다. 환차익으로 인해 원화 채권보다 평가액이 높을 것입니다. 그러니 철수는 채권도 달러로 보유하는 게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 달성에 조금 더 유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철수가 원화로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원화 예금 또는 원화 채권을 보유한 것과 유사한 효과가 납니다.
월 30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면 연 3,600만원의 안정적인 수입이 생깁니다. 예금이나 채권에 10억원을 투자한 것과 비슷합니다. (엄밀하게는 은퇴 후부터는 수입이 발생하지 않으니, 이보다 적은 금액을 투자한 효과가 납니다)
적지 않은 금액을 이미 채권에 투자한 셈입니다. 철수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원화 채권을 편입한다는 것은 자산 배분 관점에서는 별다른 이점이 없습니다.
30대에 부자가 되려는 영희
영희는 5년간 회사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월급을 모아둔 돈과 퇴직금을 털어 동료들과 스타트업 기업을 창업했습니다. 영희의 꿈은 회사를 키워 상장시키거나 회사가 좋은 조건으로 피인수되어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스타트업 기업도 직원에 대한 대우가 좋아서 예전처럼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사업을 키우지는 않습니다. 유능한 직원이 스타트업 기업의 주요 성공 요인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월급도 무난하게 받고 있을 것입니다.
영희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어떤 위험이 있을까요? 스타트업 기업이 실패하는 경우입니다. 모아둔 돈으로 참여한 지분은 모두 날아가고, 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처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경험은 남습니다.
영희가 스타트업 기업에서 월급을 받아 아낀 돈을 주식에 투자하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까요? 스타트업 기업이 상장되거나 좋은 조건에 피인수되면 영희의 목표는 웬만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몇 년간 꾸준히 모은 돈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보험의 역할을 하게 될 뿐, 목표 달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영희는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가?
스타트업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철수의 경우처럼 불황이 원인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기업을 상장하거나 추가 투자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한 경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희가 주식에 투자해 두었다면, 그 가치는 하락하게 됩니다.
실패를 거울삼아 영희가 다시 시도하기 위해서는 불황에도 제 가치를 할 수 있는 자산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앞서 철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달러 주식, 달러 채권의 비중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영희가 부모님에게 받은 상가가 한 채 있다고 하겠습니다. 100만원의 월세를 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자산을 소개하면서 리츠(REITs;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 부동산투자신탁)에 7.5%의 투자금을 배분하라는 자산 배분 전략을 따를 필요가 있을까요?
영희의 상가는 원화 채권 그리고 국내 리츠 자산의 역할을 합니다. 이런 종류의 자산을 영희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나는 것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책과 현실은 왜 다를까?
철수와 영희는 자산 배분에는 두 가지 공통 사항이 있습니다. 원화 채권이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철수는 안정적인 월급을 받고 있고, 영희는 월세를 받는 상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원화로 근로 또는 사업 소득이 있는 분은 장기적으로는 국내 주식도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경기가 좋으면 월급도 오르고 사업도 잘되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수준의 장기 수익률이라면 미국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게 위험에 대비하기에 더 유리합니다.
안정적인 원화 소득이 발생하는 분이 장기 투자하는 경우, 미국 주식을 위주로 하고 나머지 자산은 높지 않은 비중으로 편입하는 게 대개는 무난합니다.
책에서와 다소 다른 자산 배분 전략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투자 입문서가 큰 규모의 자산을 굴리는 투자자 또는 펀드 매니저 입장에서 자산 배분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펀드 운용자 민수
민수는 펀드를 운용하는 전문 투자자입니다. 집도 있고, 상가도 하나 가지고 있으며, 투자 수익률에 따른 성과급도 상당합니다. 호화롭게는 아니더라도 평생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자산을 모아 두었습니다.
민수가 펀드 운용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 나도 나도 돈을 싸들고 와서 맡깁니다. 민수네 펀드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도 충분한 재력이 있습니다.
민수는 펀드의 자금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까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며 펀드 자금을 모두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그렇다면 다음 해 국내 또는 전 세계 증시가 좋지 못해서 큰 손실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환매를 요청할 것입니다. 민수는 펀드 매니저로 재기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민수는 펀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것이 목표가 됩니다.
민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산 배분 전략을 써야 합니다. 시장 수익률을 어느 정도 따라가면서, 장기적으로 시장 수익률을 상회하거나 시장 대비 높은 안정성을 거두어야 투자자들이 안심합니다. 특히, 주식과 같이 변동성이 높은 자산이 크게 하락할 때, 얼마나 잘 방어하느냐가 신규 투자자를 유치하거나 기존 투자자를 유지하는데 있어 중요합니다.
민수는 주식과 채권을 비롯한 다양한 자산을 편입하여 펀드의 안정성을 꾀하게 됩니다. 여기에 장기 수익률이 높을 것이라는 예상하는 세부 자산(예를 들어 주식의 종목)을 일부 편입하여 시장 대비 초과 수익률을 꾀하게 됩니다.
펀드 투자자에게는 주식과 채권 6 : 4 포트폴리오가 벤치마크이며, 이를 연평균 2%p 초과 달성하는 것이 펀드 운용 목표라고 설명합니다. 이 정도면 나름 부유한 투자자가 일부 여유 자금을 투자하기에 합리적인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민수에게 맡긴 투자금의 목표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용 그 자체가 목표일 수 있습니다.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설정한 기금이라면 펀드의 안정성은 더더욱 중요해집니다.
민수가 10년간 펀드를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민수가 추가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한 홍보를 위해서든, 본인의 투자 철학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든, 투자 입문서를 하나 쓴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내용이 포함될까요?
주식과 채권을 적절한 비중으로 투자하는 자산 배분 전략의 유용성을 설명할 것입니다.
정리하며
자산 배분 투자는 투자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산의 투자 비중을 적절히 배정하는 것입니다. 대개의 투자 입문서에서 설명하듯,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는 펀드 매니저 입장의 목표일 뿐입니다.
투자자마다 구체적인 목표와 투자 환경은 다릅니다. 그러니 모두에게 적절한 자산 배분 투자 전략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투입할 투자금만 고려하는 경우, 의도하지 않게 특정 자산에 쏠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화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으면서 장기 투자하는 직장인이라면, 국내 주식과 원화 채권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보다는 미국 주식과 달러 채권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자산 배분 투자 전략은 자산의 비중을 결정하고 이를 기계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개별 자산이 투자자의 목표 달성에 얼마나 유리한지 또는 불리한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이를 반영한 전략일 뿐입니다.
구체적인 투자 대상(예를 들어 특정 종목)의 수익률이 높을 거라 기대한다면, 해당 종목에 높은 비중으로 투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국내 주식 비중을 20%로 설정했다고 해서, 해당 종목을 포함한 국내 주식 비중을 20%로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내 주식 비중 20%는 장기적으로 투자자 목표 달성에 유리할 거라 기대하고 설정한 대략적인 가이드입니다. 해당 종목이 국내 주식 평균보다 목표 달성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된다면, 자산 배분 투자 전략 입장에서도 20% 이상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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