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트의 정석 (김성진 = 퀀트대디) - 투자는 어디 숨었니? 퀀트 분야의 지도 같은 책 (서평)

오렌지사과키위 2024. 7. 9. 15:11

퀀트(Quant)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는 다의어입니다. 퀀트 분석(Quantitative analysis)이나 퀀트 분석가(Quantitative analyst)를 지칭하기도 하고, 퀀트 분석에 기반한 펀드(Quantitative fund)퀀트 투자(Quantitative investing)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퀀트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상위에 나열된 대부분의 책은 '퀀트 투자'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에는 투자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시중에 출판된 퀀트 투자 입문서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퀀트 분야 전반에 대해 현업 종사자가 세세하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참고: 조금 재미있게 퀀트 분석가의 업무를 엿볼 수 있는 책으로는 영주 닐슨의 <월스트리트 퀀트투자의 법칙>이나 권용진의 <인공지능 투자가 퀀트>가 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자동차 정비 방법을 소개하는 책과, 자동차 정비 사업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책 정도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의 책은 자동차를 소유한 개인을 위한 책입니다. 뒤의 책은 자동차 정비소 종사자를 위한 책입니다.

'엔진 소리가 이상할 때 취할 수 있는 긴급 대처법 3가지'와 같은 내용은 없을 수 있습니다. 대신 '신형 자동차가 나왔을 때, 정비법을 습득하기 위한 절차'나 '효율적인 정비소 운영을 위한 업무의 체계화 방법'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퀀트라는 단어가 책 제목에 있길래 무심결에 집어 들었는데, 성장주란 무엇인가?, 소형주 투자의 이점, XX 전략의 과거 20년 백테스트와 같은 단어는 목차에도 없고, 책 안을 샅샅이 뒤져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일까요?

퀀트 전반에 대한 대축척 지도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소개는 다른 서평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이 책에는 퀀트와 관련한 대부분의 내용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세부 전략에 대한 설명만 없다고 보면 됩니다. 퀀트 업무라는 것이 무엇인지 소개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회계 담당자가 알아야 하는 업무에 대한 설명서 또는 지침서 같은 책이라 보면 됩니다.

퀀트와 관련하여 잘 알고 있는 것,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그런 게 있다고 들어는 본 것, 잘못 알고 있는 것, 전혀 몰랐던 것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퀀트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대축척 지도와 같은 책입니다.

현업 종사자와 개인 투자자의 시각 차이

대개 본인이 퀀트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는 개인 투자자는 퀀트 투자 입문서를 몇 권 읽고, 백테스트 툴을 이용하여 마음에 드는 전략을 생성하여 투자에 사용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하는 퀀트 투자라는 것은 퀀트 분야에서 일부분에 불과하고, 제도권 종사자는 나와 다른 차원에 있구나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내 방식은 기술적으로 높지 않은 수준인데 장기적으로 통할까?라는 의구심도 들 수 있습니다.

관점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현업 종사자가 자신의 업무에 대해 쓴 책이기 때문입니다.

현업 종사자와 개인 투자자는 투자 목적이 다릅니다. 현업 종사자에게 투자는 본업입니다. 투자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받고, 승진을 합니다. 성과가 부실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성과에 대한 평가는 분기, 반기, 연간 등으로 나누어져 있을 수 있으며, 실적에 대한 압박도 상당할 수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설명한 자산 배분 투자에 대한 시각 차이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펀드 매니저가 투자에 대한 책을 쓰면, "주식 60%, 채권 40%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장기수익률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안정성이 높아집니다."라는 내용이 들어가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참고: 자산 배분 투자는 왜 하는 것일까? (직장인은 국내 주식, 원화 채권에도 투자해야 하는 걸까?)

근로 또는 사업 소득이 있는 개인은 대개 투자가 부업입니다. 이미 자산을 많이 축척한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본업이 우선입니다. 본업에서 성과를 거두어서 연봉을 높이고, 경영을 잘해서 사업 소득을 늘리는 게 장기 목적을 낮은 위험으로 달성하는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근로 또는 사업 소득은 국내 채권 또는 국내 주식에 가깝기에, 높은 비중으로 이들 자산을 보유한 상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개인 투자자가 위험을 헤지 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의 하나는, 해외 특히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이는 것입니다.

경기가 나빠져서 다니던 회사가 폐업하거나, 경영하던 사업체가 어려워지면, 국내 채권과 국내 주식은 큰 도움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거나, 가족이 거주할 부동산을 마련한 상황이라면, 투자금 대부분을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게 현실적으로 더 안전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퀀트 분석가가 새로운 기술과 투자의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큰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면서 시장 대비 초과 성과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그 성과로 본업의 수입도 함께 높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 투자자는 액티브 펀드 매니저 여럿과 패시브 펀드 매니저 여럿을 고용하는 위치에 있는 투자자입니다.

저자와 관점이 다른 부분

저자는 퀀트 분야 전반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퀀트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에게 유익합니다. 아래는 극히 일부 저자와 의견이 다른 경우입니다. 퀀트를 사용하는 목적이나 퀀트에 대한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제 의견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퀀트 투자의 목표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어떠한 시장 상황에서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퀀트 분석가의 시각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에게 퀀트 투자의 목표는 "본업의 수입을 보조하여, 장기적으로 기대하는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수익률을 얻는 것"일 수 있습니다.

퀀트 투자에서는 어떤 투자 전략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인간이 추가적으로 시스템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

현업 종사자는 미리 계획한 절차나 결정을 바꾸려면, 그 사유가 명확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위 책임자의 승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사후에 좋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되면, 책임 소재의 문제가 생기며, 평가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 투자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개입해도 됩니다. 본인이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시장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의 영역이다. 퀀트 투자는 예측을 하지 않는 전형적인 투자 방식이다.

단어에 대한 관념의 차이일 수는 있지만, 예측은 절대적인 것으로, 대응은 확률적인 것으로 설명한 듯합니다. 내일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예측이고, 오늘 주가가 내렸으니, 내일 반등 확률을 55%로 보고 매수 포지션을 취하는 것은 대응이라 보는 듯합니다.

예측과 대응은 같은 것으로 봐도 된다고 봅니다. 예측도 정확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기 예보는 예측이지만, 비가 올 확률로 설명합니다. 대응은 비가 올 확률이 35%라면, 우산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합리적인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정확도가 낮은 예측은 투자에 유용하지 않을 수 있고, 정확도가 높은 예측은 투자에 유용할 수 있는 것뿐입니다. 애초에 특정 퀀트 전략을 사용하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또는 시장 대비 초과 수익이 난다는 것 자체가 예측입니다.

퀀트 투자를 포함해서 투자는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예측을 통해 수익을 얻고자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퀀트 비즈니스에서 IR(Information Ratio; 정보 비율)을 높이기 위해 B(Breadth; 폭)를 늘리려면 다룰 수 있는 자산과 전략의 개수를 늘리면 된다.

최한철의 <월가아재의 제2라운드 투자 수업>에서도 비슷하게 B를 종목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IR = IC × √B로 계산하는데, 이 식의 목적은 액티브 펀드의 성과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100억원의 투자금을 두 명의 액티브 펀드 매니저에게 할당하였습니다. 초집중 펀드 매니저는 4² = 16개의 국내 대형주에 분산 투자했고, 초분산 펀드 매니저는 16² = 256개의 주식을 포함한 전 세계의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했습니다.

1년 뒤, 두 펀드의 벤치마크 대비 변동성과 초과 수익률은 엇비슷했습니다. 초분산 펀드의 정보 비율은 초집중 펀드의 4배이고, 펀드 매니저의 성과급도 그렇게 차등해서 지급해야 할까요?

B를 단위기간의 투자 횟수로 이해해야 식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B는 병렬(parallel) 투자 횟수가 아니라, 직렬(serial) 투자 횟수입니다. 벤치마크 대비 초과 수익을 얻은 투자 횟수가 늘어나면, 펀드의 성과도 그에 비례해서 늘어납니다. 두 펀드 매니저의 투자 기회는 1년 동안 1회로 동일하니, 성과급도 동일하게 지급해야 합니다.

퀀트 투자에서 B를 늘리려면, 투자 기회를 보다 자주 포착해야 합니다. 상호 보완적인 전략으로 풀을 구성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책에서 설명하는 팩터 포트폴리오 프레임워크의 역할입니다. 개인 투자자라면 스윙 전략이 이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어떤 팩터를 발견했다고 했을 때 그 상황에서 반드시 물어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 팩터가 어떤 이유로 어떤 인과관계를 통해 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인가?'다.

경험적 증거가 인과성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면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투자에 유용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투자 수익은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만으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통계적 기법을 사용하는 페어 트레이딩을 들 수 있습니다. 페어 트레이딩은 과거 유사한 가격 흐름을 보였던 복수 자산(또는 종목)의 가격 차이가 벌어졌을 때, 미래에 그 차이가 좁혀질 거라도 예상하고, 롱숏 전략을 구사하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가격 차이가 좁혀져야 하는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현실에서는 투자에 활용 가능할 수 있습니다. 참고: 페어 트레이딩 (내 짝꿍은 누구? 통계적 분석을 이용하여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롱숏 전략)

변동성 프리미엄을 이용하면, S&P 500 지수에 대한 외가격 풋옵션 매도 전략으로 시장(S&P 50) 이상의 수익률을 거둘 가능성이 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납득이 가지 않은 부분이 있어 남깁니다.)

그림 7-19를 보면 경이로운 수익률을 나오는 풋옵션 매도 전략의 백테스트 결과가 있습니다. S&P 500 지수에 대해 1주일 만기의 풋옵션을 외가격(OTM; Out of The Money)에 발행(매도)하는 전략입니다.

대략 5.7년 정도의 기간 동안 1500배의 수익률을 거둔 것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 기호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1500배로 보입니다. 연평균 성장률(CAGR)로는 260% 정도입니다.

중간에 코로나 사태로 발생한 -90% 정도의 MDD가 하나 있습니다. S&P 500 지수의 당시 MDD가 -33% 정도였으니, 이 전략은 기초 지수에 투자하는 전략 대비 레버리징이 된 상태입니다.

레버리지 배율은 추정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보수적으로 계산하면 log(1 - 90%) / log(1 - 33%) = 5.75배 정도까지 레버리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이 계산과 아래의 추정은 엄밀한 방식이 아닙니다.

레버리지 배율을 최대로 잡아 5.75배라고 하면, 전체 투자금 중에서 대략 17% 정도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가지고 있게 됩니다. CAGR도 그만큼 낮아지게 되고, 260% / 5.75 = 45% 정도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CAGR이 45%이니, 전체 자금의 20% 이내로만 풋옵션 발행에 사용해도, 시장 수준의 안정성에 월등히 높은 수익률이 나오는 전략이 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풋옵션을 발행하면 기초 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커버드콜 전략을 쓰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커버드콜 ETF는 장기적으로 기초 자산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여준 사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어딘가 과최적화되었거나, 백테스트의 계산 결과에 오류가 있거나, 수익률이 1500배가 아닌 1500%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일 수익률이 1500%라면 CAGR은 62%가 되며, 레버리지 배율을 고려하면 11% 정도가 됩니다. 이 기간 시장 수익률이 12%이니,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설명 가능한 수준의 커버드콜 전략이 됩니다.

정리하며

이 책은 퀀트 분야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유익한 책입니다. 입문자에게는 조금 난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가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책의 구성과 내용에 상당히 신경을 썼기에,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을 알고 있으면, 이해하기 쉽고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는 책이지만, 이 분야를 처음 접하는 분은 읽다 보면 흥미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퀀트 업종 종사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여러 번 읽어서 지식을 쌓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참고서적도 충분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개인 퀀트 투자자에게는 시각을 넓혀 준다는 측면에서 권할만한 책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은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비슷한 개념을 접하게 되면 해당 부분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개인 투자자도 현업 종사자와 비숫한 수준으로 지식이나 경험을 쌓아야 퀀트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퀀트 투자 그 자체가 본업인 현업 종사자와, 투자가 부업이며 일부 자산을 퀀트 투자로 운용하는 개인 투자자는 투자 목적이 다르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과 경험도 다릅니다.

대규모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현업 종사자와는 달리, 개인 투자자는 이러한 제약이 덜합니다. 개인 투자자는 본인에게 좀 더 유리한 환경과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현실적인 수준에서 퀀트 투자를 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도움이 되었다면, 이 글을 친구와 공유하는 건 어떻까요?

facebook twitter kakaoTalk naver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