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예측과 대응 (저는 예측하지 않습니다. 대응할 뿐입니다. 저를 CEO로 뽑아주십시오! - 제일라면과 신임 CEO 면접)

오렌지사과키위 2024. 8. 6. 14:54

투자에 있어 예측은 중요하지 않다는 뉘앙스의 말이 있습니다. 투자의 대가라는 분들도 이런 의도를 담고 있는 명언을 여럿 남겼습니다. 피터 린치는 "당신이 경제를 예측하는데 13분을 썼다면, 그중 10분은 낭비한 것이다. (If you spend 13 minutes a year on economics, you've wasted 10 minutes.)"라고 했고, 존 템플턴은 "시장 동향이나 경제 전망이 아닌 가치에 투자하라. (Buy Value, Not Market Trends or The Economic Outlook.)"고 했습니다.

워런 버핏은 "나는 시장을 예측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나는 저평가된 증권을 찾는 데 노력을 전념하고 있다. (I make no attempt to forecast the market—my efforts are devoted to finding undervalued securities.)"라고 했습니다.

예측, 특히 거시 경제에 대한 예측은 불확실성이 높아 투자에 효율적이니 않으니, 본질적인 기업 가치 파악에 집중하라는 의도입니다. 간혹 이를 확대 해석해서 예측이 아닌 대응을 중요시하라는 의미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투자에서 예측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요?

주의: 용어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예측은 미래 발생 가능한 사건에 대한 확률적 분포와 신뢰도를 의미합니다. 대응은 특정 상황에서 취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제일라면의 신규 CEO 면접

제일라면은 국내 라면 업계 매출 1위인 회사입니다. 최근 순한 맛 라면인 삼삼탕면을 출시한 업계 2위 삼삼라면의 성장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라면 매출 업계 순위가 뒤바뀔 지경입니다. 현 CEO는 이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날 뜻을 밝혔습니다. 신임 CEO 선출을 위해 면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지원자는 안예측씨입니다.

  • 면접관: 안예측씨. 제일라면을 어떻게 경영할 계획인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예측: 저는 미래는 불확실하기에 예측은 의미가 없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제일라면을 경영할 계획입니다.
  • 면접관: 삼삼탕면의 매출 성장세가 위협적입니다. 어떻게 대응할 계획입니까?
  • 안예측: 삼삼탕면의 매출이 늘어날 수도 있지만,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미래는 불확실하기에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 면접관: 신제품을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 안예측: 신제품이 잘 팔릴지 아닐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신제품 개발은 불필요한 행위입니다.
  • 면접관: CEO로 선출될지 아닐지 불확실하니, 면접에 오실 필요도 없었겠군요.

두 번째 지원자는 나대응씨입니다.

  • 면접관: 나대응씨. 제일라면을 어떻게 경영할 계획인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 나대응: 저는 시장 상황에 맞춰 적절히 대응하는 전략을 펼칠 계획입니다.
  • 면접관: 삼삼탕면의 매출 성장세가 위협적입니다. 어떻게 대응할 계획입니까?
  • 나대응: 삼삼탕면과 동일한 제품을 개발해서 판매하면 됩니다.
  • 면접관: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신제품을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 나대응: 경쟁사가 신제품을 개발해서 잘 팔리는 것을 확인하면, 그때 동일한 제품을 개발해서 판매해도 늦지 않습니다.
  • 면접관: 경쟁사와 동일한 전략을 펼친다면, CEO가 필요 없겠군요.

세 번째 지원자는 전예측씨입니다.

  • 면접관: 전예측씨. 제일라면을 어떻게 경영할 계획인지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전예측: 저는 시장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동시에, 차별화를 위한 신제품 개발에 신경을 쓸 계획입니다.
  • 면접관: 신제품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전예측: 소비자 의견을 조사해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신제품 후보를 추려내야 합니다. 1년 전에 비해 순한 맛 라면에 대한 선호도가 조금 높아졌지만, 건더기가 부실하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습니다. 제일라면이 우위에 있는 매운 맛을 좋아하는 소비자도 여전히 많습니다.
  • 면접관: 생각하고 계시는 신제품이 있습니까?
  • 전예측: 한국인은 매운 맛에 익숙해 있기에, 순한 맛은 일시적인 유행이라 보고 있습니다. 5년 전에 지금의 삼삼탕면과 유사한 곰탕라면이 유행했지만, 반짝 유행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순한 맛 라면 유행이 지속되거나 고착화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순한 맛 라면을 고급화하는 전략과 부드러운 매운 맛 라면을 개발하는 전략을 함께 진행해서 시장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경쟁사와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면접관: 신제품 개발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까요?
  • 전예측: 고급화된 순한 맛 라면을 개발하는 것이 1순위입니다. 순한 맛 라면의 유행이 일시적이라 판별되더라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매운 맛 라면은 시장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고 후순위로 진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제일라면은 누구를 CEO로 뽑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제일라면이 CEO를 뽑는 것과 개인 투자자가 투자 전략을 세우는 것은 다른 것일까요?

예측과 대응

대응이란 무엇일까요? 시장 상황에 맞춰 어떤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투자라면 보유 자산의 일부를 매도하거나, 새로운 자산을 매수하는 행위가 됩니다. 그런데 왜 대응을 하는 것일까요? 그 대응이 합리적이라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제일라면과 삼삼라면은 상장 회사입니다. 철수는 두 회사 주식을 모두 보유하고 있습니다. 삼삼탕면의 성공으로 삼삼라면의 영업 이익이 크게 늘었습니다. 철수만 알고 있는 비밀 정보가 아닙니다. 철수는 삼삼라면을 계속 보유해야 할까요?

삼삼라면의 영업 이익은 2배로 올랐습니다. 주가는 3배가 되었습니다. PER이 10에서 15로 높아졌습니다. PER이 올랐으니 파는 것이 합리적인 대응일까요?

제일라면의 영업 이익은 20% 줄었습니다. 주가는 반토막이 났습니다. PER이 16에서 10으로 줄었습니다. PER이 내렸으니 추가 매수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응일까요?

철수는 예측 없이 대응할 수 없습니다. 안예측씨가 CEO로 선출되었다면, 철수는 제일라면을 매도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안예측씨의 철학대로 제일라면이 경영된다면, 제일라면의 미래가 좋지 않거나 불투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예측씨가 CEO로 선출되었다면, 마음을 다르게 먹을 수도 있습니다. 순한 맛 라면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친다면, 제일라면은 과거 영업 이익과 주가를 회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순한 맛 라면의 유행이 고착화되더라도 제일라면이 순한 맛 라면 시장 일부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기에, 과도하게 하락한 주가는 일부 회복될 거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예측은 미래에 대한 추정입니다. 대응은 예측에 따른 행동입니다. 그러니 투자에 있어 예측은 의미 없다는 이야기는, 안예측씨처럼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됩니다.

영희는 매달 적립식으로 미국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투자합니다. 예측을 하지 않는 것일까요? 미국 증시가 장기적으로 채권보다 높은 수익률을 거둘 거라 예상하기에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예측이 없다면, 미국 S&P 500 지수에 투자할 이유가 없습니다.

민수는 미국 S&P 500 지수가 -20% 이상 폭락하면, 그때까지 모아 두었던 단기 자금을 20거래일에 걸쳐 분할 매수합니다. 민수는 대응만 하는 것일까요? 민수도 영희와 동일한 예측에 기반해서 투자하는 것입니다.

민수는 왜 하필이면 -20% 폭락일 때 20거래일에 걸쳐 분할 매수하는 것일까요? 적어도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 정도가 투자 효율이 높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5% 하락 시 5거래일에 걸쳐 분할 매수하는 전략보다 낫다고 예측한 것입니다.

예측을 좁게 이해하면, 내일 주가가 오른다 또는 1년 뒤에 이 종목의 주가는 3배가 된다라는 단순 명료한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측은 미래의 발생할 사건에 대한 확률 분포의 형태를 띱니다. 여기에는 신뢰도가 부가되어 기술됩니다. 조금 더 넓게 보면, 특정 상황에서 취한 어떤 행동의 결과에 대한 추정입니다.

민수는 왜 영희와 달리 여유 자금을 모아 두는 것일까요? 미래에 폭락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고, 그때 추가 투자하면 투자 효율이 더 높다고 추정했기 때문입니다.

워런 버핏이 CEO로 재직하고 있는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된 사업 분야는 보험과 재보험입니다. 보험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없애주는 대가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입니다. 워런 버핏은 합리적인 예측에 도가 튼 투자자입니다.

정리하며

예측은 투자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투자는 예측 + 행동(자산 배분)을 반복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대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시장 상황의 변화 + 수정된 예측 + 수정된 예측에 따른 합리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한 시장 변화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계획을 세워두면, 마치 대응을 하면 예측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합리적인 예측을 하지 않고 사업 또는 투자를 하겠다는 것은 도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대개의 투자자에게는 불확실성이 높고, 정확도가 낮은 거시 경제에 대한 예측보다는,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낮고, 정확도가 높은 선별된 개별 기업에 대한 예측이 투자에 조금 더 유리할 뿐입니다. 투자 대가의 말은 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쿤자산운용의 홍진채 대표가 버핏클럽 웹진에 올린 워런 버핏은 '시장 예측의 대가'?는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유료 콘텐츠이지만, 상당히 많은 분량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참고: 해당 저자와 동일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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