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나단타씨는 남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DAITSO ETF의 수익률 분포를 이용하여 시장 대비 초과 수익을 거두는 상황을 소개하였습니다. 나단타씨는 독점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효율적 시장에서도 초과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지난 글을 먼저 읽으면 이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지난 글: 효율적 시장에서 초과 수익은 불가능한 것일까? - 예측이란 무엇일까? 독점적 정보와 초과 수익
나단타씨는 오랜 기간 수익의 비밀을 지켜왔습니다. 오랜만에 액티브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 매니저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 박프로: 이제 죽겠어. 주가 지수가 5,427년간 박스권이야. 무슨 방법을 써도 시장보다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없어. 효율적 시장 가설이 맞는가 봐.
- 이프로: 나도 마찬가지야. 수익률이 완전 무작위야. 최근 발표된 무진 브릿지의 실증 분석 논문 읽었어? 예측이라는 게 의미가 없대.
- 박프로: 나단타? 너 무슨 좋은 일 있어? 여자 친구 생겼어? 왜 실실 웃고 있어? 남들은 심각한데.
- 나단타: (얼큰하게 취해서) 흐흐흐. 난 계속 벌고 있지. 무려 3,618년간이나.
- 이프로: 뭐? 비법이 뭐야? 우리도 좀 알자. 밥벌이는 해야 하잖아. 우리 이러다 다 잘려. 내가 보너스 받으면 너 이번 여름휴가 책임진다!
- 박프로: 그래. 빨리 털어놔! 내 와이프 친구들 성격 좋고 미녀인 것 알지? 성공할 때까지 소개팅 시켜줄게. 여름휴가 너 혼자 갈 거야?
친구들의 성화와 한 턱 크게 내고 소개팅까지 시켜준다는 친구들의 회유에, 나단타씨는 호기롭게 자신의 비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무슨 일이 발생할까요?
주의: 이 글은 학술적으로 엄밀한 설명이나 논리 전개가 아닙니다. 학계에서 이 주제와 관련한 진지한 논의가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글이니 참고만 하기 바랍니다.
알파의 소멸
나단타씨는 자기들만 알고 있겠다고 다짐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비법을 공개했지만, 비밀이 유지되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박프로가 주선한 소개팅에서 만나 이제 곧 와이프가 될 여자 친구와의 지난 여름 휴가를 고려해 본다면 나단타씨는 손해를 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단타씨의 비법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나단타씨의 투자 전략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DAITSO ETF의 연 수익률은 25% 또는 -20%이며 발생 확률은 반반으로 무작위이고 예측이 불가능하다.
- 매년 동일한 금액을 투자한다.
- 25% 수익률 또는 -20% 손실률이 발생하기에, 단리 기대 수익률은 (25% - 20%) / 2 = 2.5%이다.
- 시장의 장기 복리 기대 수익률은 (1 + 25%) × (1 - 20%) - 1 = 1.25 × 0.8 - 1 = 1 - 1 = 0%이다.
- 나단타씨의 전략은 시장 대비 연 2.5%의 단리 초과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박프로와 이프로는 (둘을 총칭해서 두 프로) 나단타씨의 비법을 사용하여 초과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투자금은 점차 불어나고, 점점 더 많은 간접 투자자가 두 프로에게 투자금을 맡기게 됩니다.
두 프로의 운용 자산은 시장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으로 커지게 됩니다. 이를 지켜본 경쟁사들은 그 비법을 어떻게든 알아내거나 유추해서 동일한 전략을 사용하게 됩니다.
두 프로는 나단타씨의 비법을 변형해서 사용합니다. 나단타씨는 단리로 투자하지만, 두 프로는 복리로 투자하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최적의 복리 투자 비율은 켈리 공식을 이용하여 도출할 수 있습니다.
$$ \frac{p}{a} - \frac{q}{b} = \frac{50\%}{20\%} - \frac{50\%}{25\%} = 2.5 - 2.0 = 50\% $$
전체 투자금 중에서 50%를 투자하면 √(1 + 12.5%)(1 - 10%) - 1 = √(1.125 × 0.9) - 1 ≒ 0.62%의 복리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시장 대비 0.62%의 복리 초과 수익률이 발생하게 됩니다.
전체 투자금의 50%를 투자하면, 수익을 얻으면 투자 비중을 줄이고, 손실이 생기면 투자 비중을 늘리는 역추세 전략을 사용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100만원의 절반인 50만원을 투자했는데, -20% 손실이 발생하면 계좌는 현금 50만원 + DAITSO 40만원 = 90만원이 됩니다. 다음번에는 절반인 90만원 / 2 = 45만원을 투자하기에, DAITSO를 45만원 - 40만원 = 5만원치 추가 매수합니다.
반대로 25% 수익이 발생하면, 계좌는 현금 50만원 + DAITSO 62.5만원 = 112.5만원이 됩니다. 절반인 112.5만원 / 2 = 56.25만원을 투자하기에, DAITSO 56.25만원 - 62.5만원 = -6.25만원치를 매도합니다.
매해 마지막 거래일 장마감 동시 호가에 리밸런싱을 한다고 하겠습니다. 마감 직전이기에 DAITSO의 그해 수익률은 확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단타씨의 전략을 사용하는 투자자는 25% 수익률이 기대되면 매도 주문을, -20% 손실률이 예상되면 매수 주문을 내게 됩니다.
참여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미미한 거래량이라면 투자자의 기대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하지만 점차 더 많은 투자자가 이 전략을 사용하게 되면, 매년 마지막 가격은 예상한 수익률 분포를 벗어나게 됩니다. 역추세 전략이니 25%보다 낮은 수익률 또는 -20%보다 적은 손실률이 발생하게 됩니다. 점차 시장 초과 수익인 알파가 줄어들게 됩니다.
투자자는 알마까지 매수 가격과 매도 가격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알파가 발생하지 않는 가격일 것입니다. 당해 DAITSO의 수익률이 0%가 될 때까지 가격이 조금씩 움직이며, 알파는 점차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 알파가 소멸하는 과정을 구체적인 사례나, 수식으로 표현해 보려고 했는데,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 오르지 않습니다. 효율적 시장이라면 심정적으로는 알파가 소멸할 듯 하지만 확신은 아닙니다.
제로 섬 게임
시장 수익을 기준으로 두면, 주식 시장은 제로 섬 게임입니다. 누군가 초과 수익을 거두었다면, 다른 누군가는 시장 대비 손실이 발생합니다. 알파는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지난 몇 편의 글에서는 주식 시장을 포지티브 섬 게임이라 소개했습니다. 글을 쓸 때 생각한 용어와 학술적인 용어의 정의가 조금 다른 듯해서 정리해 봅니다. 개인적인 분류이니 참고만 하기 바랍니다.
- 제로 섬: 참여자들의 손익 합이 항상 0인 게임.
- 포지티브 섬: 참여자들의 손익 합이 고정된 양수인 게임.
- 네거티브 섬: 참여자들의 손익 합이 고정된 음수인 게임.
- 플러스 섬: 참여자들의 손익 합이 양수이되 고정되지 않은 게임.
- 마이너스 섬: 참여자들의 손익 합이 음수이되 고정되지 않은 게임.
한 시장 내에서도 손익의 정의와 합산의 범위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식 유통 시장에서 투자자 수익의 총합은 시장 수익입니다. 장기적으로 주식 시장은 성장한다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그 수익이 얼마인지 미리 알 수는 없지만 고정된 값이라고 가정하면 포지티브 섬이 됩니다.
시장 초과 수익만 고려한다면, 포지티브 섬은 제로 섬으로 바뀌게 됩니다. 여기에 거래 비용이나 세금과 같은 마찰 비용을 반영하면, 거래가 빈번할수록 전체 수익이 낮아지니 마이너스 섬으로 바뀌게 됩니다.
주식 발행 시장은 조금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자본 확충을 통해 성장하려는 기업과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으려는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합니다. 신규 상장 기업의 장기 수익을 양수라 가정하면, 주식 발행 시장은 플러스 섬이 될 수 있습니다. 미래가 밝은 기업이 적절한 가격으로 상장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수익의 총합은 커지게 됩니다.
관점에 따라서는 유통 시장도 제로 섬이 아닐 수 있습니다. 수익의 총합이 아닌, 편익의 총합으로 보는 경우입니다. 다음 달 자녀의 학자금 마련을 위해 주식을 매도한 투자자와 장기 수익을 기대하고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는 수익 기준으로는 제로 섬 거래를 한 것입니다. 편익 기준으로는 양쪽 모두 만족스러운 플러스 섬일 수 있습니다.
알파는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나올까?
금전적인 손익만 고려하고, 마찰 비용이 없으며, 시장 초과 수익을 기준으로 하면 주식 시장은 제로 섬 게임입니다. 나단타씨의 비밀 전략으로 얻은 알파는 누군가의 손실로부터 발생합니다.
시장에 세 가지 타입의 투자자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 타입 A 투자자: 시장에 장기 투자합니다. 매매를 하지 않습니다.
- 타입 B 투자자: 나단타씨의 전략을 사용합니다. 역추세 전략을 사용합니다.
- 타입 C 투자자: 나단타씨의 전략에 의해 발생하는 거래를 받아줍니다. 추세 전략을 사용합니다.
타입 A 투자자는 패시브(passive) 시장 투자자이기에 매매를 하지 않습니다. 타입 B 투자자와 타입 C 투자자 사이에서만 거래가 발생합니다.
타입 B 투자자는 DAITSO가 오르면 일부 매도하고, 내리면 추가 매수하는 역추세 전략을 사용합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전략으로 알파를 얻습니다.
타입 C 투자자는 타입 B 투자자의 매매 물량을 받습니다. 타입 B 투자자와 반대 방향으로 매매하게 되니, 오르면 추가 매수하고, 내리면 일부 매도하게 됩니다. 추세 전략을 사용하게 됩니다.
타입 B 투자자의 알파는 타입 C 투자자의 손실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타입 B 투자자는 저점 매수 + 고점 매도를, 타입 C 투자자는 고점 매수 + 저점 매도라는 특성을 가지게 됩니다.
주의: 추세 매매 전략이 장기적으로 좋은 전략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극히 단순화한 이 시장에서는 역추세 매매가 수익 창출에 유용한 것뿐입니다.
참고: 타입 C 투자자가 장기적으로 손실을 보게 되는 이유는 타입 B의 매매와 짝을 지어 정리해 보면 유도가 가능할 듯합니다.
정리하며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유용한 독점 정보를 이용하면, 시장 대비 초과 수익인 알파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나단타씨 경우처럼 독점 정보의 일부는 이미 알려진 정보를 가공하여 생성한 것일 수 있습니다.
알려진 정보의 범위를 기초 정보로만 한정한다면, 현실의 한계로 인해 2차 가공 정보는 효율적 시장에서도 일시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알려질 테고 해당 정보로 얻을 수 있는 알파는 점차 소멸할 것입니다.
주식 시장과 같은 제로 섬 게임에서 알파는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앞에서 본 타입 C 투자자는 추세 추종이라는 그럴듯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설명에서 가정한 시장에서는 타입 B 투자자의 호주머니를 채워줄 뿐입니다.
모든 1차와 2차 정보가 완벽하게 공개된 효율적 시장은 어떤 모양일까요? 어떠한 전략으로도 초과 수익을 거둘 수 없는 시장일 것입니다. 마치 우주의 종말처럼 엔트로피가 극에 달할 것입니다. 주가 흐름은 의미 없는 미세한 노이즈만 표현될 것입니다.
오늘의 교훈: 술을 마시더라도 투자 비밀은 누설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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